(동양일보) 초등학교에 설치된 방화 셔터의 비상문이 어린 학생들이 열기에는 너무 무거워 불이 났을 때 대피를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14일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 우영제 책임연구원·민정기 선임연구원·양소연 연구원은 한국방재학회에 발표한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의 일체형 방화 셔터 비상문 개폐력 평가' 논문에서 이렇게 분석했다.

건축법상 일체형 방화 셔터는 방화문을 설치할 수 없는 경우에만 지자체 허가를 받아 설치하도록 돼 있지만, 실제 국내에서는 공간 활용성이 좋다는 이유로 널리 사용된다.

국토교통부 고시에서는 이 비상문의 개폐력이 133N(뉴턴) 이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연구진은 이 규정이 용도나 장소를 가리지 않고 적용돼, 힘이 약한 어린이들이 많은 초등학교에서는 자칫 위험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을 실험으로 확인했다.

연구진이 500명의 초등학교 1학년생을 5개 그룹으로 나눠 최대한의 미는 힘을 측정한 결과 남학생의 평균적인 개폐력은 99N이었고 여학생은 80N에 그쳤다.

국토교통부 고시 기준 이상의 힘을 보인 학생은 남학생 중 16.2%, 여학생 중 5.5%에 불과했다.

물론 건물에서 사용되는 비상문의 개폐력은 고시 기준보다 낮기 때문에, 실제로 방화문을 열기 어려운 학생의 수는 많이 줄어든다.

연구진이 학생들의 힘을 측정한 학교에서 무작위로 실제 일체형 방화 셔터 비상문의 개폐력을 측정한 결과 평균적으로 필요한 힘은 54∼63N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고시 기준의 40∼47% 수준이다.

측정된 값 가운데 가장 작았던 33N을 기준으로 살펴보더라도, 여학생의 5%는 비상문을 열 만한 힘이 없는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진은 이를 검증하기 위해 실제로 방화 셔터를 작동시킨 뒤 100명의 1학년 학생이 탈출할 수 있는지도 실험했다.

그 결과 남학생 55명 중 1명(1.8%)이, 여학생 45명 중 5명(11.1%)이 비상문을 열고 탈출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불이 난 학교에서 어린 여학생들이 고립된 상황이 벌어진다면 꼼짝 못 하고 갇히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연구진은 "화재가 발생해 검은 연기로 앞을 분간하기 어렵고 호흡이 곤란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는 어려움이 더욱 커질 것"이라며 "일률적으로 법을 적용하기보다는 대상에 따라 기준값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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