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애 <충북여성발전센터소장>

 

가끔 텔레비전을 통해 유니세프나 월드비전의 공익 광고를 볼 때마다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의 대통령궁을 방문하여 만났던 기르마 월데기오리기스 대통령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6.25전쟁 때 우리나라는 한국보다 훨씬 잘 살던 나라였고, 한국전쟁에도 참전했던 나라였는데 이렇게 도움을 받는 나라가 됐다. 우리도 한국처럼 빠른 시간 내 경제 부흥을 일으켜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를 돕고 싶다“며 침통해 했던 대통령의 굳은 표정.

4년 전 동양일보와 월드비전 충북지부가 ‘사랑의 점심나누기’ 모금사업을 통해 추진하고 있는 에티오피아 코리아마을 돕기 및 교실 지어주기, 기술 교육지원 사업 등에 대한 모니터링을 다녀 온 적이 있었다.

에티오피아를 방문하기 전까지 그 나라는 아프리카에서 두 번째로 못사는 나라, 커피농사가 주업인 나라 정도의 정보 외엔 없었다.

공항에 내리면서부터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행색과 표정, 도시풍경은 그동안의 몇몇 다른 나라들을 볼 때와는 사뭇 달랐다.

이 나라의 수도 아디스아바바는 대부분 양철로 된 낡은 집들과 불결한 하수구시설, 자동차들이 내뿜는 검은 매연과 비포장도로의 먼지는 장시간 이동시간을 두려움으로 가득 채웠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그 같은 불결함과 공포감의 아프리카 9박 10일 일정은 두려움이 아니라 잊을 수 없는 감동의 추억으로 아직까지 내 뇌리에 남아있다는 사실이다.

에티오피아는 아주 낯선 나라였음에도 한국전 참전 소식을 듣는 순간 우방국가라는 생각과 함께 친근감을 느낄 수 있었지만, 그로 인해 겪은 고통과 생활실태를 듣는 내내 안타까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6.25 전쟁 시 에티오피아 하일레 셀라시(1892~1975) 황제의 명을 받은 정예 육군 6037명의 병력이 한국에 파견됐다. 그 중 122명이 전사하고 536명이 부상당했다. 우리가 방문할 당시 400여명이 생존해 있다 하였지만 실제는 이보다 훨씬 적은 숫자일 것이라 전해진다. 왕정이 붕괴되고 소련식 공산당 정권이 집권한 후 온갖 박해를 받은 한국전 참전용사들은 사회적 지위를 박탈당한 채 대부분 산간 오지로 들어가 도피 생활을 하면서 병마와 싸워야 했다. 매우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었던 참전용사들의 참상은 이루 형언키가 어렵다.

충북도는 20년이 넘도록 매년 사랑의 ‘점심나누기’로 모은 도민성금 1억여원으로 이들의 소득증대사업으로 15가구가 참여하는 조합을 만들어 진흙을 이용한 토기를 생산·판매하는 사업장을 지원해 주민들이 소득을 창출할 수 있도록 임대사업장을 마련해 주었다. 또 청년들이 직업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5층짜리 학교가 건립되었으며, 수도의 좋은 자리에 4층 건물을 마련하여 3500달러 정도의 임대수익금을 참전용사에게 배분하여 실질적으로 생활에 크게 보탬이 되고 있다는 것을 이곳에 방문해서야 알았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도 충북인의 성금으로 지어졌다.

내가 만난 에티오피아 국민들은 이같은 충북도민의 사랑과 정성이 헛되지 않도록 열심히 생활해 빈곤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와 함께 대한민국에 대한 사랑을 보여 주었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내각들도 정부 차원에서 기금이 잘 활용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약속과 함께 꾸준한 지원에 대한 감사를 도민에게 전달해 줄 것을 당부 하였다.

에티오피아의 이곳저곳을 방문하는 동안 날씨와 교통수단, 음식 등으로 고통스러웠던 적도 있었지만 우리를 맞이하는 그들의 표정과 진심어린 감사는 방문기간 내내 눈시울을 적시게 했다.

지금은 질병과 배고픔으로 고통 받고 있지만, 우리의 작은 손길을 통해 분명히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힘이 이곳에 있으리라고 믿게 됐다.

마지막으로, 나의 작은 후원이지만 매달 3만원씩의 지원금으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더 성장해 중학교 진학 소식을 전해온 다임에게도 희망과 축복의 한해가 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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