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새벽, 법원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조의연 서울중앙지방법원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구속영장 기각 이유에 대해 “뇌물 범죄의 요건이 되는 대가관계와 부정한 청탁 등에 대한 현재까지의 소명 정도, 각종 지원 경위에 관한 구체적 사실관계와 그 법률적 평가를 둘러싼 다툼의 여지, 관련자를 포함해 현재까지 이루어진 수사 내용과 진행 경과 등에 비추어 볼 때, 현 단계에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새벽에 ‘기습적’으로 영장을 기각한 법원에 대한 반응은 엇갈렸다. 대다수의 국민들과 법조계, 진보세력과 야권은 경악을 금치 못했고, 재계와 일부 보수세력은 환영의 뜻을 표했다.
18일 박영수 특검이 구속영장을 신청할 때만 해도 국민들은 내심 이번에야 말로 사법 정의가 실현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이번 구속영장 기각으로 재벌 앞에만 서면 유독 작아지기만 하는 사법부에 대해 적잖은 실망감을 안게 됐다.
조 부장판사가 기각 사유로 든 맥락을 몇 가지로 나누어 보면 이렇다. 첫째 대가관계와 부정한 청탁 등에 대한 현재까지의 소명 정도의 부족, 둘째 각종 지원 경위에 대한 법률적 평가를 둘러싼 다툼의 여지, 셋째 현 단계에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려움 등이다. 그러나 조 부장판사의 이런 판단에 대치되는 구속 사유 또한 매우 많고 명확하다.
‘지원 경위에 관한 사실관계에 대한 다툼의 여지’는 이번 사안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라고 보기 힘들다. 사실관계에 대한 특검과 이재용 회장의 다툼의 여지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이 회장과 삼성 그룹 관계자들은 자신들이 금품을 제공했다는 사실을 그대로 인정하고 있다. 다만, 그 이유가 대통령의 강압에 의해 어쩔수 없이 내야했다는 삼성측 주장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따른 대가를 바라고 출연했다는 특검의 주장이 배치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합병 전후에 벌어진 비상식적 사건들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삼성의 상상을 초월하는 최순실측에 대한 지원은 대통령과 최순실의 힘을 빌어 합병을 추진하려 했다는 혐의를 공고히 해주는 정황인 것이다.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은 법원이 문형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한 것과도 배치된다. 삼성의 합병 추진-박 대통령·최순실의 합병 지원-국민연금의 합병 찬성으로 이어지는 ‘고리’에서 문 이사장의 행위는 범죄에 해당되고 이 부회장은 범죄 요건에서 빠질 수 있단 말인가. 이 부회장의 주장을 받아들여 대통령의 강압에 의해 출연한 것이라 해도 개인의 돈이 아닌 삼성이라는 회사의 돈을 지원한 사실은 업무상 횡령, 또는 배임에 해당된다. 그것 또한 특벙경제범죄가중처벌의 중한 위법 행위로 법정형이 무겁다.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다. 그 정의를 실현하는 곳이 사법부다. 국민들은 이번 기회를 통해 정경유착의 청산을 바라고 있었다. 그런 여망을 법원은 이번 구속영장 기각을 통해 외면해버렸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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