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투어' 소개하며 영·호남 지역감정 거론도

(동양일보)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20일 국회를 방문해 정세균 국회의장과 심재철·박주선 국회부의장을 예방했다.

오전 10시께 국회 본관에 도착한 반 전 총장은 입구에서 환한 표정으로 주위에 손을 흔들었지만, 사방에서 취재진이 몰려들자 다소 경직된 모습도 보였다.

특히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한 입장을 집요하게 묻는 일부 진보성향 매체 기자가 질문세례를 퍼붓자 답변하지 않은 채 굳은 표정으로 승강기를 타고 국회의장실로 향했다.

▲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왼쪽)이 20일 오전 국회의장실을 방문해 정세균 의장과 인사를 하고 있다.

다만 승강기 안에서 해당 기자가 지난 2013년 미국 교수가 쓴 대담집에 '반 총장은 일본이 이웃 국가들과 유익한 관계를 맺기 위해 이틀에 한 번꼴로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표현된 점을 거론하자 반 전 총장은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다"고 일축했다.

반 전 총장은 기자 출신인 심 부의장을 만나 "유엔에선 이런 식으로 취재는 안 하고, 대개 좀 정리된 상태로 (한다)"며 "(귀국해서) 보니까 미디어 수도 늘었고, 상당히 열정적으로 취재하는 것 같다"고 국내 언론 환경에 대한 인상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 18일 대구에서 일부 인터넷 매체 기자가 거듭 위안부 문제를 묻자 "똑같은 질문을 수백 분이 같이 하므로 참 어렵다"고 난색을 보였으며, 행사를 마치고 걸어 나오면서 이도운 대변인에게 "내가 마치 역사의 무슨 잘못을 한 것처럼…나쁜 X들이다"라고 격정을 토로한 바 있다.

한편, 반 전 총장을 맞은 정 의장은 "10년 동안 애 많이 쓰셨다"고 격려하며 "국위를 선양하시고 금의환향하셔서 진심으로 환영한다"고 말했다.

이어 "소중한 경험을 하셨으니 그런 자산을 국가적 어려움이나 국민을 위해서 잘 써주시면 고맙겠다"며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대하겠다"고 덕담을 건넸다.

이에 반 전 총장은 "월요일부터 나흘 동안 지방을 다니면서 '민생 투어'를 했다"며 "국민이 경제라든지 여러 가지 정치 상황에 대해 많이 어려워하고 걱정하는 것을 듣고 봤다"고 말했다.

반 전 총장은 "대통령 탄핵 절차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특히 국회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저는 의회민주주의를 믿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반 전 총장은 새누리당 소속 심 부의장을 만나 자신의 '민생 투어'를 소개하며 "지방 소도시까지 발전된 게 아주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다만 "여러 가지 분열상이 있는 걸 많이 느꼈다. 어떤 면에서는 상대방에 대한 증오도 있는 것 같다"고 영·호남 지역감정을 거론했다.

이어 국민의당 소속 박 부의장을 만난 반 전 총장은 "국민의 투표로 선출되는 총리나 대통령은 우선 국민의 신임을 받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가 가끔 '이걸 이런 식으로 해달라'는 말을 들으면 '우선 내가 당선부터 돼야 당신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겠느냐'는 식으로 농담한다"고 말했다.

반 전 총장은 재직 시절인 지난해 5월 20일 이후 8개월 만에 국회를 방문했다.

당시에는 국회 본관 2층의 귀빈 전용 출입구 앞에서 내려 국회 측의 의전을 받으며 방문한 반면, 이번에는 국회 본관 1층의 일반 출입구를 통해 의전 없이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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