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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인문학 특강 7 ·부산 한국해양대
동양 인문학 특강 7 ·부산 한국해양대
  • 동양일보
  • 승인 2017.01.22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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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정치가 잘되면 국민들의 성토와 분노도 없어”
▲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

동양포럼 주간인 김태창 (한·중·일이 함께 공공하는 철학모임 대표)박사가 지난해 11월 28일 부산 한국해양대를 찾아 강연했다. 최고경영자 인문학강좌(주관 김태만 교수)의 일환으로 열린 이날 행사에서 참석자들과의 대화 형식으로 진행된 김 박사의 특별강연 내용을 요약, 정리해 싣는다. <편집자>

 

방금 소개받은 김태창입니다. 저는 한국(청주, 안동, 익산)과 일본(쿄토, 오사까, 센다이)을 왕래하면서 지방 간 세대 간 상생-공공하는-철학대화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일본 오사카에서 왔습니다. 부산에서 여러분을 만나 뵙고 말씀을 듣고 싶어서 온 것입니다. 요즘 일본에서는 신문, 잡지, TV 기타 여러 매체를 통해서 한국 때리기와 박근혜 조롱하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제가 한국에 오기 직전에 서점을 둘러보았는데 저의 눈에 들어온 자극적인 글귀가 보수 우익계 월간지의 표지에 이처럼 커다랗게 적혀 있었습니다.

‘절망의 한국과 비극의 박근혜’

그 잡지의 목차를 대강 훑어보았더니 소위 염한론자, 한국에 관한 일이라면 쌍지팡이를 짚고 헐뜯어야 직성이 풀리는 인간들 중에서도 이름 꽤나 알려진 남자와 여자들이 대거 동원돼서 한국을 폄하하고 박근혜 대통령을 흠잡는데 온 힘을 쏟아놓은 기사들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며칠 전의 일입니다만 교토대학에서 현대한국조선학회 주최 학술대회가 있었는데 거기에 친구들과 함께 참석했었습니다. 쿄토대학의 오구라 기조 교수가 한번 와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해서였습니다. 물론 한국은 대한민국이고 조선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입니다. 말하자면 남·북한을 등거리에서 학술적으로 연구한다는 학술연구단체인데 생각한 것 보다는 회원 수도 많고 규모도 큰 모임이었습니다.

거기서도 한국의 현실과 박근혜 대통령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한국과 북한을 개관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이어서 그런지 매스컴에서 연일 쏟아져 나오는 선동적인 것과는 다르게 냉정한 분석과 체험관찰에 터 잡은 발언이 주류를 이루는 분위기여서 모처럼 마음을 가라앉히고 경청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제기한 문제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아직 미성숙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것과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에는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일본 쪽의 방송만 듣고 있는 게 아니고 한국 쪽의 방송도 열심히 듣고 있습니다만 연일 아침부터 밤까지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의 국정농단과 거기에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관련된 남자와 여자들에 대한 비난과 분노의 말들이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고 그것들이 일본 쪽의 방송에서도 여과 없이 전달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서울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언론인이나 지식인들의 견해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방에서는 어떤가, 그리고 생활현장에서 나날이 열심히 삶을 이어나가고 계신 일반시민들은 오늘의 나라 형편과 박근혜 대통령 그리고 몇몇 관련 인사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를 직접 만나서 말씀을 듣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의 말씀은 강연이라기보다는 대화로 진행하고자 합니다.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선 제일 앞에 계신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A. 예, 저는 짧은 인생을 살아왔지만 제 나름대로의 지금의 생각을 말씀 드린다면 누구를 비판하기 전에 제 자신에게 문제가 많았구나 하고 자책하게 됩니다. 가야할 길도 제대로 생각하지 않았고 그저 살기에 바빠서 다른 문제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 뒤에 앉아계시는 여성께서도 말씀해주시지요.

B. 저는 우리의 살림살이가 전보다 못하게 되었다는 느낌이 큽니다. 경제적인 피해가 피부로 느껴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렇지만 언제부터인가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 세대는 위에서 하라면 하고 하지 말라고 하면 안했지만 우리 세대는 그렇게는 살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매사를 서로 상의해서 정해나가야 되는데, 그렇게 해도 잘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구태의연하게 상의도 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마음대로 정해놓고 그저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하지 말라하면 일이 잘 풀려나가지 않는다는 걸 모르는 것 같아서 이렇게 가다가는 머지않아 사단이 나도 크게 나겠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대통령의 불통이 문제고 그렇다고 야당은 소통을 제대로 하느냐하면 그쪽도 마찬가지지 않습니까? 제 생각으로는 모든 문제는 불통에서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이번에는 저쪽 뒤에 앉아계신 선생님께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C.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존경심이 있어서 그분의 따님이신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도 컸습니다. 그러나 그 큰 기대가 큰 실망으로 바뀌고, 그렇게 밖에 될 수 없었던 아픔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라는 것이 요즘 저의 고민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그 당시의 시대적 상황적 요청에 잘 부응했던 것 같은데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의 시대적 상황적 요청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청와대에서 대통령의 따님으로 살 때나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 은둔생활을 할 때나 세상과 직접 대면하고 보통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직접보고 체험한 적이 없어서 그런지 현실감각이나 서민감각이 전혀 없고 언제까지나 공주님처럼 자기 위주의 생각으로만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자기만을 위해서 존재하고 자기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쪽은 전혀 의식에 들어있지 않은 것 같은데 그것이 결국 자기만이 아니라 수많은 다른 사람들까지도 커다란 비극으로 몰아넣게 된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박근혜 대통령을 위해서 일했다는 이유 때문에 사직당국에 불려가고 감옥 신세가 되고 이리저리 비난의 화살을 맞고 있지않습니까? 그런 상황 속에서도 자기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 그들이 잘못해놓고 자기까지 거기에 엮어서 마치 자기가 큰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자기를 비난하고 정죄하려는 것은 너무나 억울하다는 것 아닙니까?

그 옆에 계신 여성께서도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D. 예,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대통령은 아무나 하는 자리가 아니라고 봅니다. 자기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남도 자기만큼 소중해서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있을 때 정치도 할 수 있는 것이고 그 마음이 더 커서 모든 국민을 자기처럼 소중하게 여기고 감싸 안을 준비와 각오가 되어 있을 때 대통령도 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박근혜라는 사람은 대통령할 그릇이 아닌데 작은 그릇에 너무 큰 것을 담기를 기대한 것이 잘못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박근혜라는 사람이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아준 우리에게도 커다란 문제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결국 대통령은 그 대통령을 선출한 국민의 수준을 반영한다고나 할까요. 그 대통령에 그 국민이고 그 국민에 그 대통령이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제 다시는 그런 대통령이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국민의 정치의식의 성숙이 이루어져야 될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이제 중간 쯤에 계신 분, 예, 말씀해 주십시오.

E. 저는 오늘의 우리가 겪고 있는 고뇌와 고통을 몽땅 박근혜라는 한 개인의 탓으로 하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우리나라와 우리 사회와 우리 모두에게 있었던 문제들이 쌓이고 쌓여서 그것들이 언젠가 어디선가 크게 폭발하게 되어 있었는데 때마침 최순실이라는 정체불명의 여자와의 특수 관계가 알려지게 되면서 매일매일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갖가지 동영상과 더불어 전문가들의 발언이 쏟아져 나와서 마치 박근혜대통령과 최순실이 비밀스럽게 음모작당해서 나라를 망치고 있다는 것처럼 분위기를 만들어가고 있는데 박근혜와 최순실이라는 두 여자가 갖가지 부정을 저질렀다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그렇게 목소리 높게 비판하고 비난하는 그 잘난 언론인, 지식인, 전문가들은 무엇을 그렇게 올바르게 해왔다는 겁니까? 속았다, 배반당했다, 그럴 줄은 몰랐다고 하면 면책이 됩니까? 나서서 말하지 않는 대다수의 국민들은 그 잘난 사람들처럼 말할 줄 몰라서 말하지 않은 게 아니라 어디 잘난 사람들이 얼마나 떠벌리는가를 두고 보자는 겁니다. 저는 그런 인간들이 더 큰 골칫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잠룡이니 대권 주자니 하는 권력에만 집착하는 인간들이 박근혜보다 더 좋은 대통령이 된다는 보장도 없는데 마치 박근혜는 악마이고 자기들은 천사나 되는 것처럼 떠벌리고 다니는 것도 큰 문제라고 생각되는데 어떻습니까? 좀 더 차분하게 자기를 반성하고 정말 자기가 대통령이 되면 이 나라와 이 백성들을 더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를 자성하는 자세를 보이는 사람은 없을까요? 지금은 누구를 매도하고 자기는 면책되기를 바라는 지극히 자기 독선적인 지도자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겪은 이 아픔과 괴로움과 절망을 치유하고 나라와 겨레가 새롭게 거듭나는 길을 진지하게, 진솔하게, 진실 되게 찾아보려는 겸허한 자세가 필요한 게 아닙니까?

 

정말 감사합니다. 솔직하고 진지한 말씀을 해주셔서 저 스스로도 깊고 진한 자기 성찰을 다시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제 말씀도 여러분께서 피력해주신 귀한 소감에 맞추어서 저 자신의 개인적인 소견을 숨김없이 토로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A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에 저도 동감하는 바가 많습니다. 사실 저 같은 사람이 날마다 나라 걱정 겨레 걱정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아니지요. 그런 걱정을 하고 나라 일 겨레 일을 탈이 없도록 잘해달라고 국회의원도 뽑고 대통령도 선출한 것 아닙니까? 잘 사는 나라 앞선 나라에서는 대통령이나 수상이 누군지 알지 못하고 관심도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런 것 없이도 별탈 없이 잘 되어가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만 본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정치에 관한 관심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신문이나 잡지나 TV에서도 우리나라처럼 정치면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별로 찾아보기 어려운 특수성이 아닌가라는 느낌이 듭니다.

지나친 정치적 관심은 우리나라의 정치가 잘 되어가고 있지 않다는 것 아닙니까? 평상시에는 건강 문제에 대해서 거의 무관심하다가도 건강 상태에 이상이 생기고 어딘가 아프고 괴로우면 그때야 비로소 건강에 대해서 신경을 쓰게 되지 않습니까? 나라의 정치도 그것이 정상적으로 잘 되어가는 곳에서는 모든 국민이 신경을 곤두세워서 분노하고 성토할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거의 날마다 데모를 하고 갖가지 대중 매체가 정치와 정치가를 비판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습니까? 정치가 잘못돼도 아주 잘못되어 간다는 것을 말해주는 거잖아요. 어느 나라에서나 정치가에 대한 야유나 조롱은 있지만 우리나라만큼 온통 정치 이야기뿐인 경우는 드문 것 같습니다. 정치 과잉 현상이라고나 할까요. 건전한 정치 의식과 정치 의식의 과잉 현상과는 엄연히 다른 거지요. 정치가 정상적인 상태에 있으면 건전한 정치의식은 있어도 정치 과잉은 조절되는 법이지요. 정치가 비정상적이면 비정상적인 정치의식이 팽배하게 되어 사회가 온통 정치화되고 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A선생님께서 그저 살기에 바빠서 나라 걱정할 틈이 없었다는 말씀대로 저도 외국에서 일을 하다보니까 우리나라 우리 겨레를 생각하는 일이 별로 없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또 어떻게 보면 저 같은 일반시민의 경우에는 오히려 지극히 정상적인 삶의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일본에서 흔히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은 학자이거나 기업인이 많은데 일본에 관해서나 세계에 관해서나 정치가 화제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정치를 화제로 삼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러나 저 혼자 있게 되면 TV를 보게 되고 특히 정치에 관한 보도를 접하게 되면 온통 잘못된 정치를 규탄하는 내용이 주종을 이루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정치문제에 휘말리게 되는데 그때마다 짜증이 나는 게 솔직한 심경입니다. 자기 나라에 대해서 자긍심까지는 몰라도 건전한 평정심을 지키고 싶은데 너무나 한심해서 심한 자괴감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가? 그야말로 이게 어디 나라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한국이라면 싫어하는 사람이 많은 일본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심리적으로 위축되지 않을 수 없는 조국의 상황이어서 여러 모로 걱정하고 한탄하는 동포들이 많습니다.

B선생님께서 제기하신 불통의 문제는 저 자신이 지난 20여넌 동안 일본을 거점으로 세계를 다니면서 펼쳐온 공공철학 대화활동의 핵심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미국이나 서유럽, 독일, 프랑스, 이태리, 스페인 등-그리고 동유럽-폴란드, 헝가리, 분열되기 전의 유고 등?에서 가졌던 공공철학대화를 통해서 ‘공공(하는) 이성’(Public reason)의 중요성이 강조되었습니다. 다양하고 복잡한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었습니다마는 제 나름대로 요약하면 개개인의 자기성찰(자기반성), 자기개혁(자기초월)을 위해서 건전한 이성의 활용이 필요하고 그것과 함께 자타간의 균형 있는 소통을 원활하게 이루기위해서는 건실한 ‘소통(하는) 이성’(Communicative reason)의 발휘가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종래의 철학은 자기성찰의 이성을 중시하는 데 머물렀지만 공공철학에서는 서로 다른 입장과 견해와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 각자의 입장과 견해와 목표를 유지하면서 함께 더불어 서로의 조정 조절 조화를 적정화 할 수 있는 길을 힘으로가 아니라 말로 찾는다는 것이 무엇보다는 중요한 공통과제이기 때문에 거기에 걸맞은 ‘소통(하는) 이성’?저 자신의 개인적 견해로는 ‘대화(하는) 이성’ (dialogical reason) 이 더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만?의 활성화를 문제관심의 핵심으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와 같은 입장에 서왔기 때문에 저도 B선생님과 함께 불통의 문제를 가장 근본적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보통사람들도 남들과 함께 더불어 서로 삶을 이어나가는 데는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갈등 대립 시비를 차분한 마음가짐으로 대화를 통해서 풀어나가려는 자세 태도 처신이 없어서는 안 되는 조건인데 하물며 정치지도자가 되겠다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갖추어야할 자질이 아니겠습니까? 대통령에게만 필요한 덕목이 아니라 무릇 정치에 뜻을 두는 사람이면 그 누구에게도 강하게 요구되는 기본적 자질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에게서는 건실한 대화하는 이성이 현저하게 결여되어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같은 청와대에 있는 참모들과도 별로 대면대화가 없었다는 다수 인사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급기야 대통령의 불통이 오만과 독선과 함께 국민적 불만과 울분의 표적이 되었으며 그것이 분노를 공유하는 수많은 국민들의 집단행동?촛불집회?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던 것이 아니겠습니까? 만약 박근혜 대통령에게 어느 정도의 소통이성이 갖추어져 있어서 문제를 자기 뜻대로만 풀려고 하지 말고 입장과 견해와 목표를 달리하는 사람들과 끈질기게 대화를 되풀이하면서 상호간의 최소한 이해와 납득을 도출하기 위해서 상대방의 불만과 불평을 해소하려는 노력을 했어도 이렇게까지 사태가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물론 야당쪽도 불통의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무조건 반대만하고 건설적인 협의 협력 협찬을 하려는 마음자세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대통령만 탓할 수 없는 사정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정치체제가 대통령중심제로 되어있기 때문에 대통령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되어 있지만 동시에 모든 책임도 결국 대통령에게 돌아가게 되어 있어서 개인적으로 생각하면 억울한 점도 있겠으나 그것이 싫다면 애당초 대통령 될 생각을 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권한이 막대하면 그에 따르는 책임도 막대하다는 것이 당연한 이치 아니겠습니까? 대통령은 모든 국민의 마음을 헤아려야 할 자리인데 자기 마음만 귀히 여기는 데서 생긴 문제이고 그래서 무제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대통령중심제의 대의명분입니다. 만약 책임을 나누어 지고 싶다면 권력도 나누어 갖는 제도적 개편을 모색해야 하겠지요. 헌법개정의 논의가 있는 것은 바로 이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C선생님의 말씀을 경청하면서 새삼스럽게 저의 뇌리에 떠오른 사람이 있습니다.. 전후 일본의 가장 다이나믹한 리더십을 발휘했던 다타까 가쿠에이(1918∼1993) 수상 겸 자민당 총재의 외동딸로 태어나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자라서 서민의 애환을 전혀 모르고 세상사람을 두 가지 부류로 나누어 보는데 한쪽에는 남을 부리는 ‘지배하는’ 사람이 있고 또 한쪽에는 부림을 받는 ‘지배당하고 복종하는’ 사람이 있다는 식의 이분법밖에 모르는데 그와 같은 기본적인 결함이 있다는 것은 나중에서야 알게 되지만 한때는 대중적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듯했고 일부에서는 강력한 수상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던 여성 정치가가 있었습니다. 다름 아닌 다나까 마끼코 중의원의원입니다. 너무나 세상 물정을 모르고 자기중심적이고 말은 많은데 자기선전-자기미화-자기과시뿐이고 타자와 함께 더불어 서로 진지하고 진솔한 대화를 나눈다는 마음자세가 전혀 보이지 않았던 정치가였습니다. 처음에는 사람됨을 잘 모르고 그녀의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그녀의 정치생활을 여러 모로 도왔지만 점차 인간적으로 가까이 하는 가운데서 그녀의 독선적인 오만함이 도를 넘어서는 경우가 빈발하면서 측근인사들이 그녀의 곁을 떠나가게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정당을 바꾸면서 어떻게든 정치가로서의 연명을 꾀했으나 중의원선거에서 낙선하고 지금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녀도 불통의 화신으로 불린 적이 있었습니다. 궁전 같은 거대하고 화려한 저택에서 공주처럼 애지중지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여서 성장한 상자 속의 공주님이 바깥 세상에 나와서 모처럼 자기 멋대로 수많은 사람들을 부리면서 단맛을 만끽했으나 그리 오래지 않아서 대중적 인기가 대중적 혐오로 바뀌고 그나마 정치인생의 길이 닫히게 되었다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아버지의 후광을 입고 화려하게 정계에 등장해서 짧은 기간 동안이긴 했지만 국민의 사랑을 많이 받았지만 개인적인 결함 때문에 자기 자신은 물론 아버지의 업적까지도 깎아먹는 불효를 저지르고 말았다는 점에서 서로 닮은 데가 있습니다. 저는 박근혜 대통령이 가장 힘들어할 때 곁에서 힘이 되어주고 대소사를 극진히 보살펴준데 대해서 고맙게 생각하고 어떻게든 보답하고 싶어 하는 마음은 결코 나무랄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남이 베풀어 준 호의를 배반하지 않겠다는 박근혜 나름의 미학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관계라는 범위 안에서 끝내야할 일입니다. 그 관계를 그대로 국정의 영역에까지 끌어들여서는 안 됩니다. 거기서 중대한 공사혼동(公私混同)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는 공사분별(公私分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너무나 많고 역대 대통령을 포함해서 모든 정치가나 여러 분야의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거의 예외 없이 퍼져있는 병폐중의 하나입니다만 그것이 가장 뚜렷한 형태로 가시화된 것이 박근혜 정권에서 일어났다는데 오늘의 문제가 있는 것 입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만 박근혜 대통령이나 최순실씨에게만 해당되는 병폐가 아니고 어떻게 보면 한국적 사회 병리의 일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찌되었든 국민적 분노를 사게 되었고 그 분노가 수많은 사람들이 촛불집회를 여러 번 반복하는 형태로 집약 표출되었기 때문에 대통령은 그것을 아주 무겁게 받아들여야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이나 대국민태도에서 납득할만한 책임의식이 감지되지 않고 그저 일부의 진실치 못한 인간들의 잘못된 소행으로 벌어진 불상사로만 규정하고 자기 자신이 책임질 사항은 아니라는 주장만 하고 있다는데 대한 불만과 울분과 분노가 폭발하는 상황이 아니겠습니까?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는 동안에 한국의 국격은 말할 수 없이 추락하고 끝도 없이 이어지는 공방전은 여러 이웃나라에서 절망적인 한국의 모습으로 비추어지고 경제와 안보의 양면에서 심각한 위기상황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이참에 사회적 악성종양의 뿌리를 말끔히 도려내야 된다는 주장에 무게중심이 놓여지지 않을 수 없는 현실상황이지만 그것을 도려내는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출혈이 있게 되면 기본적인 국력까지도 치명적으로 소진되고 마는 일만은 없어야되는데 그 아슬아슬한 임계점을 넘어가지 않는 고도의 슬기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특히 C선생님의 말씀 가운데 고통스런 공감을 느낀 점은 박근혜 대통령을 위해서 일하고 가까이서 모셨다는 이유만으로 사직당국에 불려 다니고 감옥에 갇히고 온갖 사회적 비난을 받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박근혜대통령 자신은 철저한 어불관어 ‘나는 모르는 일이다’의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입니다. 물론 지금의 형편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는데도, 그렇기 때문에 말로 다할 수 없이 안타까워하면서도, 그리고 그저 묵묵무대응으로 있을 수밖에 별 도리가 없을 것이라는 현실을 십분 감지할 수 있는데, 그래도 인간적인 비애를 느낄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결코 잘못된 충성심이나 맹목적인 과잉 충성을 동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믿고 따르는 사람이 없다면 어떤 형태의 지도력도 성립될 수 없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여기서 바람직한 지도자와 그를 따르는 자 사이의 올바른 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과제가 다시금 주목받게 되었습니다. 이론적인 문제가 아니라 구체적 상황 속에서 요청되는 실천적 문제로서 입니다.

D선생님께서 제기해주신 문제는 민주주의가 제도로서나 의식의 측면에서나 성숙한 단계에 이르기 위해서 반드시 겪어야할 발달과제의 핵심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흔히 민주적 지도자론이 거론되지만 그것과 더불어 심각하게 논의 되어야 할 문제가 민주적 시민성의 문제입니다. 옛날에는, 그리고 지금도 일부에서는, 최고지도자-국왕이나 대통령이나 수상-는 하늘이 낸다고 믿었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군주나 독재자가 권력과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꾸며 낸 신화에 불과합니다. 적어도 민주주의를 기본으로 하는 곳에서는 권력이나 지배의 정당성은 원칙적으로 국민의 동의에 의해서만 성립되며 따라서 최고지도자도 하늘이 내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선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저는 국민보다는 시민이라는 말을 더 선호합니다. 물론 저자신의 개인적인 견해에 불과하지만, 21세기는 국민국가의 시대가 아니고 시민연대의 국가여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국민과 시민은 무엇이 다른가?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국민은 이미 존재하는 국가의 구성원인데 비해서 시민은 새로운 국가의 형성자입니다. 국민은 국가에 종속된 존재요 시민은 국가를 갱신하는 존재입니다. 국민은 국가통치의 객체이지만 시민은 국가통치의 주체입니다. 국민국가는 국가권력에 국민이 무조건 복종하는데서 이루어지는 국가상이 기본이었지만 시민연대국가는 개개인의 시민이 연대해서 올바를 국가의 모습을 늘 새롭게 개선, 개혁, 개변시켜나가는 국가상이 핵심이 됩니다. 여기서 낡은 국가상과 그것을 받치고 있는 국민상, 그리고 새로운 국가상과 그것을 만들어내는 시민상이 근본적으로 갈라지는 것 입니다.

그래서 저는 민주주의의 기본정신에 걸맞는 시민성의 문제를 거론하는 것입니다. 국민성의 문제가 아니고요. 민주주의란 문자의 뜻 그대로 민중, 대중, 백성이 주인인 제도요, 의식이요, 규범이요, 체제입니다. 백성이 주인이 된다는 것은 이미 틀지어진 국가의 권력행사=통치의 대상=객체라는 자리에서 벗어나 국가권력의 원초적 발동자=주체라는 자리로 전환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와 같은 자리매김과 뜻매김으로 이루어지는 시민상을 전제로 하는 민주적 시민성=시민의식-시민활동-시민연대)의 기본조건을 살펴볼 필요가 있고 그렇게 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민주적 시민성의 기본조건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말하는가? 그것은 무엇보다 앞서서 분명하고 철저한 공사공분(公私公分)의 의식이요, 활동이요, 규범입니다. 이것과 대비되는 것이 공사사분입니다. 둘 다 공사혼돈을 넘어선다는 의미에서는 의식과 활동과 규범이 진일보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마는 공사구분 또는 공사분별을 하고 있다고 하면서도 그것이 공사사분(公私私分)의 상태에 머물러 있는 데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폐단에 대한 무감각, 무자각, 무반성이 오늘날 우리사회와 국가가 직면하고 있는 온갖 비리, 부정, 모순의 근본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입니다.

여기서 공사공분과 공사사분이란 각각 어떤 것이며 어떻게 서로 다른 것인가를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대로 공사공분할 수 있는 능력과 그렇게 하려는 의지와 실제로 그렇게 하는 행동, 행위, 실행이 민주적 시민성의 필수불가결의 조건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공사사분이란 공사를 구분하기는 하는데 사적으로?자기중심의 주관적인 선호에 따라서- 주관적인 입장에서-멋대로 가르고 그것을 남에게도 일방적으로 적용, 요구, 강요하는것입니다. 자기구미에 맞는 것이 ‘공’이고 자기구미에 안맞으면 ‘사’라고 몰아 붙이는 것입니다. 이때 ‘사’는 이기주의요, 개인주의요, 일탈행동이요, 파당의식이요, 배반, 불충, 불순으로 매도되어야할 사항들입니다. 여기서 ‘공’이란 다름 아닌 애국, 애당, 애향이요 충성, 충실, 진실의 표상으로 평가되고 격려되고 보상됩니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순진한 공사혼돈보다 그 피해가 더 클 수 있고 그 부정적 영향력이 더 심각한 사회병리의 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공사사분’과 분명하게 구분되어야 할 것이 ‘공사공분’입니다. 공사공분이란 공사를 공적으로-자기와는 입장과 견해와 목표가 상반되는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인식되고 거기서 생기는 차이와 대립과 갈등을 공정하게, 공평하게, 공개된 형태로 대화, 공동, 개신(=새로운 차원을 열어감) 하는 가운데서-구분하고 그것이 자기와 타자 사이의 공통인식으로 형성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공사공분에는 반드시 자타간 대화가 기본입니다. 주어진 국가의 틀 안에서 이미 존재하는 국민적 합의에 따른 공사구분이 아니라 언제나 새롭게 형성되는 국가의 기본에 따라서 새롭게 이루어가는 시민적 합의형성과정에서 어느 것이 공적이고 어느 것이 사적이냐를 되묻고 또 물어서 함께 더불어 서로 균형 잡힌 공사구분에 대한 상호인식을 조정, 조절, 조화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문제의 발단인 것은 틀림없지만, 그리고 그것은 기본적으로 공사혼돈의 측면과 공사사분의 단계에 머물러 있는 공사관으로 말미암아 국민의 신탁으로서 이루어진 공권력=공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행사되기를 기대한 권력이 사권력=사적인 목적달성을 위해서 행사되는 권력으로 변질, 오용, 편용되었다는 의미에서 공권력의 사권화가 오늘의 사단을 야기시키고 말았지만, 그렇다고 박근혜 대통령만의 문제는 아니고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병리이면서 그것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비판과 극복에의 의지가 없었고 기회를 가지지 않았으며 심사숙고 하는 자세가 없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요 그 문제는 지도적 위치에 있었던 그리고 지금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일반 대중, 민중, 백성들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자기구미에 맞는, 자기 감정에 따라서, 전적으로 사적인 동기에서 자기가 선출해놓은 대통령이, 자기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자기 불만을 해소시키지 못했다고, 자기 이익과 행복을 챙겨주지 않았다고 해서 즉각 퇴진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진정한 의미에서는 민주적 시민으로서의 공사공분의 의식과 활동과 규범이 제대로 균형 잡혀 있다고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오늘의 한국에서 우리 모두가 마음아파하고 외국으로부터 폄하, 조롱, 야유당하는 쓰라림을 감내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은 지도자와 그 지도자를 선거를 통해서 선출한 시민의 공통책임이 철저하게 물어져야 할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E선생님의 말씀에 공감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닥친 국가적 재난을, 그것이 세월호 사건이든 국정농단 사건이든, 몽땅 싸잡아서 박근혜대통령과 최순실에게, 그리고 그들과 직접 간접 관련된 사람들을 일방적으로 비판, 비난, 정죄하는 것이 과연 공평 공명 공정한가라는 문제에 대해서도 진솔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정말 탄핵에 해당되는 죄목이 있었는가?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비난, 비판, 규탄당해야된다는 것과 대통령직에서 물러난다 아니 물러나게 한다는 것은 질적으로 다른 문제입니다. 물러나라는 국민적 요구가 있다고 해서 헌법에 보장된 직무수행을 중단하고 그 자리에서 퇴출시킨다는 것은 반드시 일직선으로 연결되는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여론조사에 나타난 지지도의 수치로 대통령의 진퇴가 결정된다면 구태여 헌법규정에 의해서 대통령의 권한과 임기를 보장할 필요가 무엇입니까? 정치적 또는 군사적 정변, 혁명, 쿠데타라면 몰라도 헌정질서를 유지하는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일이라면 국민적 요구는 충분히 표출되었으니까 그 다음에는 헌법의 규정대로 권한을 위임받은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기다려 보는 것이 공사공분의 의식과 활동과 규범을 균형 있게 갖춘 민주적 시민의 올바른 자세가 아니겠습니까? 수는 상대적으로 적다고 해도 박근혜대통령의 탄핵을 반대하고 임기를 채워주기를 바라는 국민의 요구도 있으니까 말입니다.

저는 오늘 부산에 와서 모처럼 지방의 목소리를 듣게 되어 마음이 한결 안정되었습니다. 외국에 있으면 서울의 목소리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발언자도 시위자도 평론가=해설자도 정치가도 지식인도 언론인도 그리고 그것을 보도하는 기관도 모두모두 서울 중심으로만 되어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서울공화국인가 싶습니다. 지방은 독자적인 위상을 상실한 서울정부의 영토요 식민지인가라는 착각 아닌 인상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국가의 소속원으로서의 국민의 자리에서 벗어나 국가의 형성주체로서의 시민의 자리로 자리바꿈을 하고 거기서 새로운 뜻매김할 필요를 느끼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서울시민 뿐만 아니라 부산시민, 대구시민, 광주시민 그리고 청주시민 등등의 연대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시민연대국가로의 국가상의 전환이 그래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새로운 한국은 서울공화국과 그 주변에 종속된 지방 식민지로 이루어지는 낡은 나라가 아니라 시민연대를 주축으로 하는 ‘새나라(a renewed state of citizen’s solidarity)‘이며 지방간 상생이 아우러지는 가운데서 그 생존력 성장력 복원력이 창발하는 ‘신한국(an innovated Korea of inter-local conviviality)’입니다. 여러분의 귀중한 발언에 감사드리면서 저의 말씀은 이것으로 끝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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