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가 23일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명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조윤선 전 문화체육부장관이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한 혐의로 구속된 지 이틀 만이다. 문체부가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공식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문화계 블랙리스트 의혹의 핵심으로 지목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 전 장관은 지난 21일 구속 수감됐다. 조 장관은 현직 장관으로는 처음으로 특검에 구속된 만큼 정부로서는 적절한 입장을 표명한 것이 옳다고 본다.
충북 문화예술인과 단체도 이 리스트에 올라 정부의 각종 지원사업에 배제되는 불이익을 받았다.
이 문건은 문학·연극·시각예술 등 2015년 예술위원회 공모사업 5개 분야의 사업별로 배제 리스트를 정리한 것으로 이 리스트에 오른 시인 김성장·송진권씨, 소설가 윤이주씨 등이 작가당 1000만원씩 창작금을 지원하는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사업에 배제됐다.
예술공장 두레는 소외계층 문화 순회사업과 기획·경영·전문 인력 지원 사업, 극단 새벽은 방방곡곡 문화공감 사업, 충북민예총은 문화 전문 인력 양성 및 배치사업 운영단체 지원에서 빠졌고 오장환 문학추진위원회는 학술세미나 명목으로 지원받던 300만원 조차 끊겼다.
김 전 비서실장과 조 전 장관 두 사람의 구속을 지켜본 국민들은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한 사람은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 실제 비서실장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정권의 요직을 두루 맡으며 정치인으로서 화려한 경력을 쌓아왔기 때문이다.
조 전 장관은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장관 신분으로 구속되는 불명예도 기록하게 됐다.
앞으로 특검 수사의 관건은 블랙리스트를 작성하라는 대통령의 구체적인 지시가 있었는지 밝혀내는 것이다.
청와대는 그런 일이 없었다고 강력히 부인하고 있지만 리스트를 작성하고 관리하는데 장·차관이 직접 나선만큼 그 윗선인 최고 권력을 수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정권에 밉보인 문화예술인들을 각종 정부 지원에서 배제하기 위해 명단을 만들었다는 것인데 혐의가 확인된다면 이는 중대한 헌법위반 행위에 해당한다.
앞서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정관주 전 1차관, 신동철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이 구속된 것을 포함하면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구속된 고위 공직자는 5명이다.
이번 사건은 두말할 것도 없이 사상의 자유,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중대한 범법행위이고 시대착오적인 권력남용이다.
이런 형태의 왜곡된 권력 행사는 우리 헌법과 법률의 테두리 내에서 허용될 수 없으며 처벌대상이 된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블랙리스트를 최초에 누가 만들도록 지시했는지는 아직 명쾌하게 확인되지 않았다. 이 대목은 특검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명명백백하게 규명돼야 한다. 진상규명과 이에 상응하는 처벌은 유사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하다.
대통령의 탄핵심판에서도 블랙리스트는 상당한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만큼 의심의 여지없이 사실관계가 밝혀지길 바란다.
정부도 이번 일을 뼈아픈 자성의 계기로 삼아야 하며 문화예술의 표현이나 활동에 대한 부당한 차별이나 개입 등을 원천적으로 방지하는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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