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우(시인)

▲ 이석우(시인)

내소사의 여름은 나뭇잎에 사연들을 감추고 겨울은 눈 속에 감춘다. 전나무 숲길을 얼마간 걷다 보면 오른쪽에 지장암이라고 적힌 바위가 있다. 이 길을 따라 200보 쯤 걸어가면 지장암이라는 절이 나온다. 전나무 향기에 취하여 발걸음을 재촉하다 보면 잘 보이지 않는다.
지장암은 서래선림, 나한전, 그리고 요사채, 정랑 하나가 모시적삼을 차려입은 선인처럼 정갈하다. 비구니 스님들은 승방을 지키고 장독대 옆에서는 후박나무가 계절의 변화를 지킨다. 이 절은 계절을 확실하게 들어낼 줄 안다. 봄에는 꽃이 좋고 여름에는 잎새와 그늘, 가을에는 단풍이 곱다. 그러나 단풍으로 계절을 끝나게 하는 법이 없다. 청아한 오카리나 가을밤 음악회가 있고서야 겨울로 간다. 사람들의 지친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싶어서 일지 스님은 풀벌레와 소쩍새 소리가 어우러지는 오카리나의 밤을 매년 만들어낸다.
이 지장암의 일지 스님이 담은 솔잎차 맛을 아는 사람이 꽤 많은 것 같다. 나는 몇 해 전 눈 속에 발목을 잠기며 스님을 찾아 차 대접을 받을 기회를 얻었다. 스님의 손끝으로 우려낸 솔잎차 향기가 뼈 속 가까이 스며들었다.
원래 지장암은 통일신라 초 신라 고승 진표율사가 창건하였으며 각해선사의 중건과 우암거사의 삼건이 있었으나 겨우 흔적만 남은 은적암 옛 터에 1941년 해안(海眼)선사가 다시 복원하였다. 해안은 내소사에 큰 의미를 더하신 스님이다. 그런데 일지스님이 바로 그의 속가 넷째 딸이다. 해안스님은 시인이기도 하셨다. 나는 인터넷에서 검색한 시를 내보였다.“굳이”를 모두 “구태여”로 고쳐주시는데 스님의 눈가 잠시 먼 곳을 향하는 그리움이 스치고 있었다.
고요한 달밤에 거문고를 안고 오는 벗이나 / 단소를 손에 쥐고 오는 친구가 있다면 / 굳이 줄을 골라 곡조를 아니 들어도 좋다. // 맑은 새벽에 외로이 앉아 향을 사르고 / 산창으로 스며드는 솔바람을 듣는 사람이라면 / 굳이 불경을 아니 외워도 좋다. // 봄 다 가는 날 떨어지는 꽃을 조문하고 / 귀촉도 울음을 귀에 담는 사람이라면 / 굳이 시를 쓰는 시인이 아니라도 좋다.(‘멋진사람’일부)
 내소사의 봄이 한창인 어느 날 스님은 이제 세상과의 인연을 마치려 한다며 한 사람 한 사람 불러 유언을 남겼다. 마지막으로 일지를 불렀다.“ …… 혹 사리가 나오더라도 물에 띄워 없애버리고 비(碑) 같은 것은 세울 생각을 말아라.”제자들의 도리도 있고 하니 그래도 비는 세워야한다고 일지는 말하였다. “…굳이 세우려거든 앞에는‘범부해안지비(凡夫海眼之碑)’라고 쓰고, 뒷면에는‘생사어시 시무생사 (生死於是 是無生死)’라고만 써라.”
일지는 복받치는 설움을 참지 못해 울음을 터뜨렸다. 자신에게 늘 태산 같은 믿음이었던 아버지가 인연을 접으시려는 것이다.“울지 마라. 모두가 이렇게 가고 이렇게 오는 것이다.” 1974년 3월 9일 6시 30분, 해안 스님은 동녘 하늘을 붉게 적시는 아침 햇살과 함께 고요한 열반의 세계에 들었다.
이렇게 하여 내소사 스님 부도밭에는 ‘海眼凡夫之碑’라는 비가 세워지게 되었다. 자신의 이름 앞에 ‘범부’라는 수식을 잊지 말라는 스님의 인격은 너무나 고매한 것이었다. 비문은 당대 명필이며 큰 스님으로 존경받던 탄허(呑虛)스님이 썼다. 잠룡들이 나라를 바로 세우겠다고 법석을 떠는 요즘 애써‘범부’로 잠들고자했던 해안스님이 참으로 그립다. 
生死於是 是無生死(생사어시 시무생사)는 쉽게 해석되지 않는다. 이를 그가 평소 좋아하던 벽암록의 말씀‘得之本有 失之本無 (득지본유 실지본무)’와 견주어 보면 되지 않을까 싶다. 즉, 벽암록은‘얻었다 한들 본래 있었던 것이고 잃었다 한들 본래 없었던 것’이라 했으니,‘생사가 이곳에서 나왔으나, 이곳에는 더 이상 생사가 없다.’라고 읽으면 되지 않을까 한다. 이곳에서 내가 있었으나 이제 더 이상 내가 없는 것과 같다함이다. 해안은 자신의 흔적을 남김없이 거두어들이고 세상의 문을 닫으려 하지 않았던가. 그립다 범부 해안스님이,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