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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에세이- 아! 권영우 박사님
동양에세이- 아! 권영우 박사님
  • 현경석
  • 승인 2017.01.31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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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경석 <제천예총회장>
 

세상사 모든 일은 사람과의 관계로 시작된다. 맺어지기도 깨지기도 한다. 돌이켜보아도 사람을 만나 애증이나 갈등으로 욕망하고, 희비로 연민과 불면의 밤을 보낸 기억들이 새롭다. 그보다 더 ‘잊을 수 없는…’ 일 무엇이 있겠는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현명한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살려낸다는데 어리석은 나는 인연을 만나도 알지 못하고, 인연인줄 알면서도 붙잡지 못하며 살아왔다. 한세상 만나고 부딪치는 것 모두 ‘우연’ 아닌 것 없지만 그 우연을 필연으로, ‘운명’으로 만드는 것 역시 사람의 일일 것이다.

우연이었다. 늦은 밤 우연히 채용공고를 본 것은. 급박하게 그 많은 서류를 준비하고 제출한 것도 모두 다 인연이었을까? 인연 아니라면 세상천지 아무런 연고도, 채용의 가능성도 전혀 없는 도시를 찾아 평생에 잊지 못할 그분을 만나 뵐 수 있었을 리 만무했을 것이다.

겨울의 한 중소도시의 느낌은 차가웠다. 2월도 하순을 지나고 있으니 봄의 기운이 느껴질 법도한데 매서운 바람이 귓등을 때렸다. 약속된 시간보다 여유 있게 도착하니 깔끔히 정돈된 사무실로 안내됐다. 누군가 내가 마지막 차례이며 바로 앞사람이 곧 끝나서 나올 것이라 일러준다. 드디어 내 차례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가슴이 울렁거렸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큰 기대가 없었으니 불안하다거나 떨리지는 않았지만 눈앞이 흐릿하고 신경이 곧추섰다. 30분은 족히 되는 시간 가운데 계신 한분만 계속 질문하셨고 나는 있는 그대로 솔직한 생각과 경험을 막힘없이 답변했다. 그 분이 스스로 예술학과의 설립에 반대하셨다는 말씀에 나는 감히 문화와 예술에 대하여, 시대적 가치와 흐름에 대해 확신에 차서 평소의 소신을 열심히 피력했던 기억이 새롭다.

후에 알게 됐지만 그분이 바로 세명대를 세우시고 중원 최고의 명문사학으로 키우신 설립자 민송 권영우 박사님이셨다. 혈혈단신, 풍찬노숙의 어린 시절 역경을 딛고 가정교사로 번 돈으로 논밭을 사고, 목욕탕을 지으면 돈을 많이 벌 것이라 판단하여 부지를 장만하고, 건물을 짓고 경영하신 도전정신은 서울에서 가장 일찍 문을 여는 약관의 목욕탕 사장님과 가장 일찍 목욕탕을 찾는 버스회사 사장님과의 우정으로 이어졌고, 운명적으로 오늘날 국내 최대의 운수회사를 경영케 되는 대목은 한편의 드라마를 넘어서는 감동이다. ‘투자의 기본은 인간’이라는 확실한 신념과 ‘기본이 잘돼 있어야 출발이 늦어도 앞서갈 수 있다’고 강조하며 천성적 성실함과 스스로 익힌 부지런함으로 무한의 집중력과 적극적 삶으로 승화시켰다. ‘발로 뛰는 서민정책’으로 한국 현대정치사의 중심축을 이루었으나 홀연히 정계를 떠나 ‘교육 없는 국가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하시며 위세광명(爲世光明)의 건학이념을 몸소 실천하신 분. 살아생전 얼굴한번 뵙지 못하다 천신만고 노력으로 찾은 부친의 묘소에서 통곡하기 까지 효도와 성실과 검소정신으로 일군 수많은 일화들과 후학들을 위해 노심초사한 진정한 교육자 정신과 자세는 내게 더없는 귀감이 됐다.

생자필멸 회자정리(生者必滅 會者定離)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유한한 인간의 삶을 풀어내는 불경의 한 구절인데 ‘만나는 사람은 반드시 헤어진다’는 너무도 당연한 말이라 설마 그것이 다일까? 염려한 적이 없지 않다. 이 말을 “인연이 있는 사람은 헤어져도 반드시 다시 만난다”로 풀이한 조상들의 지혜가 빛난다. 소위 인연설이다. 즐거움과 희로애락의 대명사격인 멜로드라마는 인연을 무기로 시청자들의 가슴을 태우고 울리며 뻔한 막장을 연출한다. 치명적 약점은 도무지 개연성이나 당위성도 없이 모든 사건의 진행을 우연으로 일관한다. 삶의 목표와 가치관을 바꿀 정도의 격조 높은 감동이 있을 리 없다.

내가 교수로 부임하고 난 이듬해 봄날 설립자님은 급작스레 세상을 버리셨다. 너무나 황당하고 충격적인 일이라 한동안 말을 잃고 정신 줄을 놓을 정도였다. 그러나 언젠가는 반드시 다시 뵙게 될 것을 나는 믿는다. 더욱 성실히 열심히 살다가 뵙게 될 그 때 “감사했습니다!” 하고 큰소리로 인사를 드리고 싶다. 만해 한용운 선생의 시를 내 마음대로 바꾸고 연결하여 각오하듯 다시 읊는다.

“어리석은 나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지 못하였지만, 이제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이제 함께 영원히 있을 수 없었음을 슬퍼하지 않고, 잠시라도 같이 있었음을 기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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