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자(수필가)

▲ 박영자(수필가)

  설 연휴가 끝나 일상으로 돌아왔다. 날씨가 한 부주 해 준 덕분에 비교적 조용하게 가족들 모여 설을 보낼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명절은 어떤 즐거움과 행복이 기다리고 있기에 해마다 그 힘든 민족의 대이동을 치러야 하는 것일까. 귀성인파가 고속도로를 가득 메우고 먼데는 열 시간이 넘는 운전을 마다하지 않고 고향으로 달려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랑하는 마음을 전할 선물을 고르며 자식들은 부모님 뵙는 일과 가족들 얼굴 보고 안녕을 확인하는 것이요, 부모는 사랑하는 자식들 만나보고 손주들 무럭무럭 커가는 것이 대견하여 기쁘고, 음식 장만하여 자식들 맛있게 먹는 것을 바라보는 즐거움이 제일 큰 행복인 것이다.   조상님께 차례를 지내고 세배를 드리며 가족 간에 덕담을 나누고 성묘를 하며 효(孝)를 실천하는 이 민족의 뿌리 깊은 전통은 얼마나 소박하고 순수한 마음인가. 어떤 욕심도 사심도 없이 그저 가족 간의 정을 나누는 일, 핏줄간의 소통으로 만족하는 범부들이 바로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 아닌가.
  이 시대는 부모도 자식도 모두가 바쁘고, 힘들고, 아프고, 슬프고. 외롭고, 목마르며, 박해받고, 행복하지 않다고 투덜거리며 불평이다. 물질이 어느 때 보다도 풍요롭고 문화 수준이 마냥 높은데도 우리는 ‘더’를 외치며 만족하지 못하고 정신적 빈곤 속에 행복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욕심쟁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를 이렇게 위로 하신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1-12)  온유하고, 의롭고, 자비로우며, 마음이 깨끗하며,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은 행복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니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은 이미 행복이 그들의 것이다. 시기하고 질투하며 비판하고 싸우는 사람들은 결코 행복하지 않은 것이다.
  내 마음 속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내 잣대로 남을 비판한 일은 얼마나 많았던가. 시기하고 질투하여 남이 잘 되는 일에 박수치지 않았던 일은 없었던가. 하나라도 더 채우겠다고  인색하게 굴었던 일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남에게 칭찬 받겠다고 나를 옥죄고 괴롭혔던 일은 또 얼마인가. 명예가 무엇이라고 내려놓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며 살고 있는 내 모습이 오늘 따라 불쌍하고 초라해 보이기까지 하다.
  어떻게 하면 마음의 평화를 누리며 행복해 질 수 있을까가 올 해의 내 화두다. 정유년에는 무엇보다 마음 다스리기에 정진하여 행복한 얼굴로 다른 사람에게 행복을 전하는 사람이기를 소망해 본다.  어떤 형제님이 영적으로 뛰어나다는 수도원의 수사님을 찾아갔다.
  “수사님, 저는 정말 힘든 삶을 살고 있어요. 삶에서 느끼는 스트레스로 너무 불행해요. 제발 저에게 행복해지는 비결을 가르쳐 주십시오.” 이 말을 들은 수사님께서
  “제가 지금 정원을 가꾸어야 하거든요. 그동안에 이 가방 좀 가지고 계세요.”
  가방 안에는 무엇이 들었는지 그렇게 무겁지는 않았지요. 행복의 비결을 말씀해주시지 않고 가방을 맡아 달라니 당황하기는 했지만, 정원 가꾸는 일이 급한 거라는 생각에 가만히 들고 있었지요. 별로 무겁지 않다고 생각했던 가방이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무겁다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30분쯤 지나자 어깨가 아파옵니다. 하지만 수사님은 여전히 일을 하고 계십니다. 참다못한 이 형제님
  “수사님, 이 가방 언제까지 들고 있어야 합니까?” 수사님은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이렇게 말씀하시네요.
  “아니, 무거우면 내려놓지 왜 지금까지 들고 계십니까?”
바로 이 순간 형제는 커다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지요. 행복하기 위해서는 바로 자신이 들고 있는 것을 내려놓으면 되는 것이었지요. 내려놓으면 편안해지고 자유로워지는데, 그 무거운 것들을 꼭 움켜쥐고 있으려니 힘들고 어려웠던 것이지요.
  나는 어떤가? 내가 내려놓지 못하는 것들은 무엇일까? 모두 내려놓아야 행복이 바로 내 옆에 있음을 발견할 수 있지 않겠는가.
  -남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사람만이 자신의 행복도 얻을 수 있다. (플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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