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이(동양일보 편집상무)

▲ 김영이(동양일보 편집상무)

탄핵정국이 가파르다. 박한철 전 헌법재판소장의 조기 심판 결론 주문으로 2말3초(2월말 또는 3월초)로 예상되는 탄핵심판을 둘러싼 공방이 더욱 뜨겁다.
박근혜 대통령 측은 2월중 탄핵심판 변론이 마무리될 가능성이 커지자 심리를 최대한 늦추기 위한 지연작전을 펼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 측은 대규모 증인신청을 통해 변론기간을 늘리고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대리인단 전원사퇴라는 초강수를 던질 가능성도 있다. 사인(私人)이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은 경우 심판 수행을 못하도록 하는 헌재법상의 ‘변호사 강제주의’를 이용하겠다는 심사다. 대통령을 사인으로 볼 수 있느냐는 반론 속에 대리인 전원사퇴가 현실화될 경우 대리인단 재구성 및 3만 페이지가 넘는 검찰수사기록 검토시간을 감안하면 2말3초는 물 건너갈 수 있다.
박 대통령 측이 탄핵에서 살아남기 위해 조직적 대응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대리인단이 전원사퇴 가능성을 열어 둔 것이나, 박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의 입장을 밝힌 것이나, 죽을 죄를 졌다던 최순실 씨가 특검에 들어설 때 ‘민주주의 특검이 아니다’며 강압수사, 자백강요를 당했다고 큰 소리 친 것이나 모두가 사람이니까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아무리 변명과 자신을 옹호한다 해도 ‘격’에 맞아야 한다. 박 대통령이 지난 1월1일 가진 출입기자단과의 신년간담회 자리에서 자신을 둘러싼 의혹들에 대해 적극 해명하고 방어한 것 까지는 좋았다. 직무정지된 대통령의 공식 기자간담회는 적절치 못하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하지만 설 연휴 전 1인 미디어 <정규재TV>와의 인터뷰는 신중했어야 했다. 1시간여 가량의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는 오래전부터 누군가 기획하고 관리해 온 것 같다”며 억울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설 연휴 전 어떤 식으로든 대국민 메시지를 보낼 것이라는 예상은 했지만 박 대통령이 듣지도, 보지도 못한 매체를 선정해 단독 인터뷰를 했다는 것은 이외였다.
박 대통령이 그동안의 검찰 수사나 특검 수사과정에서 나오는 최순실 국정농단과의 연관성, 국민 감정 등을 감안할 때 탄핵심판에서 불리한 입장에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런 불리한 입장이라면 차라리 정공법으로 국민들에게 다가가 자신의 결백을 호소했어야 했다.
박 대통령이 선택한 <정규재TV>는 한국경제신문이 지원하는 한국경제신문 정규재 주필의 인터넷방송이다. 정규재(60) 주필은 보수논객에 극우세력의 논리를 대변해 주는 여럿 중 한 사람이다. 박정희기념재단이사이자 국민경제자문회의 균형경제분과위원이기도 하다. 비선실세 최순실의 태블릿PC에 대해 조작설을 제기하는 ‘태블릿PC조작진상규명위원회’ 발족식에서 축사를 했다. 그가 속한 한국경제는 전경련 소속 대기업이 주주로 있는 언론이다. 
박 대통령은 이 인터뷰를 통해 음모론과 색깔론, 피해자 코스프레로 반전을 시도했다. 왜 <정규재TV>인지를 암시해 준다.
박 대통령이 처절하게 몸부림을 치려 했으면 진보성향의 매체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중도 성향의 매체를 골랐어야 했다. 그래야 순수성을 의심받지 않고, 짜고 친다는 고스톱으로 오해받지 않았다. 오죽하면 같은 당 정우택(청주 상당) 새누리당 원내대표마저 “(박 대통령의 발언이) 민심과 동떨어진 언급이라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며 “합리적이지 못하고 적절하지 못한 인터뷰”라고 지적했을까.
더욱 심각하고 충격적인 것은 ‘박근혜 인터뷰 뒷이야기’라는 정규재 칼럼이 전한 내용이다. <정규재TV> 유투브 채널을 통해 공개된 이 칼럼에서 정 주필은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이 기각되면 국민의 힘으로 검찰과 언론을 정리하겠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주장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탄핵을 주도한 언론을 탄압하고 검찰을 숙청하겠다는 뜻이고, 탄핵을 촉구했던 국민들을 향해 보복의 칼날을 갈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다.
한마디로 ‘어이 상실’이다. 비선실세들의 국정농단과 헌정유린이 누구 때문에, 왜 생겼는지는 모르고 남 탓만 하는 후안무치에 우리가 아직도 유신시대에 살고 있는지 어지럽기만 하다.
박한철 전 소장은 퇴임식에서 박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의 조속한 결론을 당부했다. 앞서 이정미 수석 헌법재판관이 퇴임하는 오는 3월13일 이전 심판결론을 주문했던 박 전 소장은 “대통령의 직무정지 상태가 두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의 중대성에 비춰 조속히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점을 국민이 공감하고 있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최종적 헌법수호자인 헌법재판소에 거는 기대가 그 어느 때보다도 큰 2월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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