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수애(논설위원/충북대 교수)

▲ 권수애(논설위원/충북대 교수)

정유년 새해를 맞았다. 설 명절을 보내며 그간 잠시 잊고 있던 가족, 친지들과의 명절 인사와 새해 덕담을 주고받노라니 한 해의 시작을 더 실감하게 된다. 교통체증으로 이동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고, 게다가 불경기로 주머니 사정도 여의치 않겠지만 명절이 되면 어김없이 부모님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가족 단위의 모임이 이어지는 우리의 풍습은 잘 이어지고 있다. 명절이 있기에 서로의 바쁜 일상으로 자주 만나지 못하던 부모, 형제자매, 친지들과 일 년에 한 두 번이라도 얼굴 보고 안부를 확인하며 가족의 사랑을 느끼는 기회가 된다. 어릴 적 향수가 남아 있는 고향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보너스도 있다 
  금년 정월 내가 만났던 어느 가족모임에서는 기쁜 소식으로 훈훈한 정을 나누는  자리였다. 모이는 사람 중에 진학이나 취업 준비생이 있는 가정의 소식이 궁금했었다. 혹여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면 어떻게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지? 그 어색함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걱정을 했었는데 다행이었다. 대학 합격 여부가 궁금했던 집에서 아이도 부모도 만족할 만한 대학에 합격하였다고 기쁜 얼굴로 소식을 전했다. 막내 아이가 지난 해 대학을 졸업한 가정에서는 드디어 취업을 하여 활기차게 직장생활을 하고 있으며 명절 선물로 받았다는 옷을 들춰내 보이며 자랑도 했다. 남편이 오래 다니던 직장을 퇴직했던 가정에서는 가장이 재취업에 성공해 하늘을 다 얻은 것 같다는 아내의 얼굴에 해맑은 웃음이 가득했다. 자식과 손자녀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던 노부부는 입학과 취업에 성공한 그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그간의 수고를 칭찬하였다. 이 결실의 뒷면에는 무엇보다 며느리들의 숨은 공이 컸다며 칭찬과 함께 금일봉까지 건네주셨다. 시부모님의 인정에 감동한 며느리들은 그동안의 스트레스를 몽땅 날려 버렸는지 음식을 준비하고 나르는 발걸음이 무척 가벼워 보였다. 그날의 만찬은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행복한 밥상이었다. 가화만사성을 가훈으로 새기며 살아가는 이 가족들은 화목한 가족애를 바탕으로 성실하게 노력하여 평범한 성취의 길을 가고 있었다.
  반면 아직도 명절을 즈음하여 시가와 처가에 대한 배우자들의 처신과 대우를 두고 불화를 겪는 경우도 많은 듯하다. 물론 배우자나 부모님들이 미리 알아서 챙겨주거나 편안한 마음을 갖도록 해준다면 금상첨화이겠지만 대부분 불만의 원인은 여전히 남아있는 시가와 처가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출발한다고 본다. 자신 위주로만 생각하거나 이중 잣대를 버리고 상대방이 나의 부모이고 나의 자식이라는 생각으로 잠시 눈을 돌리면 혼인으로 맺어진 가족도 혈육만큼이나 소중한 사람들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동안 오래 함께 살았던 가족에게는 익숙한 가정문화도 새로이 가족으로 편입된 사람들에게는 낯설게 보일 수 있으니 이해하고 수용할 때까지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합의해야 할 것이다. 사회적 역할에서의 양성평등 문화가 발전하기를 바라는 만큼 가정에서의 성차별은 개선되지 못하는 부분도 많다. 집안에서의 가사나 양육의 부담에서 성별 격차는 너무나 크다.
  최근 서울시 여성가족재단의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맞벌이부부의 하루 가사노동시간은 여자 140분, 남자 19분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7배나 많은데, 주말 여가시간은 남자 251분, 여자 200분으로 남자가 여자보다 상대적으로 많다. 유급노동 시간은 남자가 평일 495분, 주말 213분인데 비해 여자는 평일 238분, 주말 100분으로 남자가 여자보다 2배 이상 많다. 이처럼 여성은 남성보다 무급 노동시간이 길고 유급 노동시간이 짧은 시간불평등의 차이를 겪고 있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경제적 지원에 앞서 남성의 가사참여를 더욱 늘려 여성이 일과 가정생활을 양립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가족친화 문화를 확산하는 것이 절대 필요하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