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일 대선 불출마를 전격 선언했다.
반 전 총장의 불출마 선언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치러지는 대선 구도에 격변을 예고하고 있다. 범여권은 야당에 대항할 유력한 주자를 잃게 됨에 따라 반 전 총장과의 연대·연합을 통해 활로를 모색하려던 계획에 큰 차질을 빚게 됐다.
특히 반 전 총장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공언해온 충청권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은 정치적 타격이 불가피 할 것으로 보인다.
반 전 총장은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제가 주도하여 정치교체 이루고 국가 통합을 이루려던 순수한 뜻을 접겠다”고 밝혔다.
반 전 총장은  “인격살해에 가까운 음해, 각종 가짜 뉴스로 인해 정치교체 명분이 실종되고 오히려 저 개인과 가족, 그리고 제가 10년을 봉직했던 유엔의 명예에 큰 상처만 남기게 됨으로써 결국은 국민들에게 큰 누를 끼치게 됐다”고 말했다.
반 전 사무총장은 ‘정치꾼’들에 대한 실망감과 배신감을 여과 없이 토로했다. 그는 “정치인들은 단 한 사람도 마음을 비우고 솔직히 얘기하는 사람이 없더라. 정치는 '꾼'에게 맡기라고도 하더라. 당신은 '꾼'이 아닌데 (정치판에) 왜 왔느냐고 하더라”며 자신이 최근 접촉한 여야 정치인들에 대한 반감을 보였다.
국제기구 수장에서 정치 신인으로 변신을 시도했던 반 전총장이 끝내 현실 정치의 벽에 부딪혀 주저앉은데에는 능력과 자질, 도덕성 등 기본적인 검증 항목도 제대로 살펴보지 못한 채 전직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간판만 믿었던 안이함이 있었다.
그가 내세운 정치교체, 분권형 개헌과 차기 대통령 임기 단축을 고리로 한 정치권의 연대는 ‘순수한 애국심’에서 비롯됐다는 적극적인 설명에도 이렇다 할 호응을 얻지 못했다. 야권 인사들은 물론 새누리당 의원들, 심지어 고향인 충청권 의원들조차 합류를 망설이는 처지에 내몰렸다. 지지율 반등의 계기를 잡지 못하고, 오히려 지지율이 지지부진하게 돼 ‘빅텐트’를 치지 못하게 되는 악순환에 빠져든 셈이다
반 전총장의 중도하차로 차기 대선 구도는 완전히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반 전 총장의 예상치 못한 중도 포기는 그렇지 않아도 야권에 크게 기울었던 대권 판세를 당분간 불균형한 구도로 몰고 갈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야당으로 급격히 기울게 된 구도는 오히려 야권에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관측도 적지 않다. 오만과 안이함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대선 판도의 불확실성이 더욱 증폭되면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시계 제로’의 안갯속 구도로 전개될 개연성이 높다.
반 전 총장은 10년동안 국제무대를 누빈 국가 자산이다. 그가 정치계를 떠났지만,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지난 10년간에 걸친 유엔 사무총장으로서의 경험과 국제적 자산을 바탕으로 나라의 위기를 해결하고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를 위해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헌신하겠다”고 한 다짐을 행동으로 실천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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