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몇 정치인은 만났을 때와 언론에 말할때 판이…모멸감 주는 말도 서슴없이"

(동양일보)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정치꾼'에 대한 배신감과 환멸을 느꼈다고 밝혔다.

반 전 총장은 자신의 정치적 행보를 상의하고 협력을 구하기 위해 여야 정치인들을 두루 만났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손학규 국민개혁주권회의 의장,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 바른정당 김무성 의원 등 정치권에서 잔뼈가 굵은 노회한 인사들이다.

반 전 총장은 이들과 독대하면서 자신의 속내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상대방도 웃음을 짓고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했다. 이어 "언론에는 제가 잘 말씀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하고 자리를 떴다.

그러나 정작 언론 카메라 앞에 선 몇몇 야권 정치인은 약속과 전혀 다른 내용으로 '험담'에 가까운 언사를 보였다고 반 전 총장 측은 2일 전했다.

반 전 총장이 전날 불출마 기자회견에서 "정치인들은 단 한 사람도 마음을 비우고 솔직히 얘기하는 사람이 없더라"며 "정치가 정말 이런 건가,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라는 얘기다.

실제로 반 전 총장은 정치인들을 만나고 나서 약 20평 규모의 마포 캠프 사무실에서 캠프 핵심인사들과 마주앉아 "○○○씨를 만났는데 뜻대로 잘 안 풀리네요. 난 솔직하게 얘기했는데, 그분들은 조금…"이라며 한숨을 지었다고 한다.

반 전 총장의 측근으로 활동했던 이상일 전 의원은 "몇몇 유력하고 유명한 정치인의 말과 태도는 반 전 총장을 만났을 때와 밖에 나와 언론을 통해 얘기했을 때와는 판이했다"며 "그들은 자기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반 전 총장의 체면을 깎아내리고, 반 전 총장에게 모멸감을 주는 말들을 서슴없이 뱉었다"고 지적했다.

반 전 총장은 귀국 이후 20일간 '마포팀' 실무진과 지내면서 소탈한 면모를 자주 보였다고 측근들은 전했다.

지난달 20일 정세균 국회의장과 면담하면서 반 전 총장은 '구라파'라는 표현을 3차례 사용했다. 한 참모가 면담 이후 "구라파는 나이 든 느낌을 준다. '유럽'으로 하시라"고 하자 반 전 총장은 머리를 긁적이며 "아, 그렇네요. 구라파가 습관이 됐는데, 제가 나이가 있어서 그런 모양입니다. 고치겠습니다"라고 했다는 전언이다.

후발 주자로서 빠듯한 일정을 소화한 반 전 총장은 캠프 사무실에서 참모들과 회의하며 시간을 아끼려고 샌드위치, 김밥, 자장면, 도시락 등을 주문해 격의 없이 나눠 먹었다는 후문이다.

이 전 의원은 "회의할 때 의견이 자유롭게 개진될 수 있도록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배려심, 지적과 비판을 메모하며 경청하고 수용할 건 바로 수용하는 유연성과 겸허함, 참모들의 접근에 칸막이를 치고 제한을 가하지 않는 열린 태도를 느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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