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1일 대선후보를 전격 사퇴했다. 그동안 ‘반반 행보’로 민심을 얻지 못한데다 정치 초년생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검증, 그리고 급격히 떨어지는 지지율에 중도하차한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항마로 보수층의 대표적 주자였던 반 전 총장이 사퇴함에 따라 ‘조기 대선’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JTBC 의뢰로 리얼미터가 1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반 전 총장의 사퇴로 반사이익을 가장 많이 얻은 이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나타났다. 이날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전 대표는 26.1%로 1위를, 황 대행은 12.1%로 2위를, 안희정 충남지사는 11.1%로 3위를 차지했다. 황 권한대행이 보수세력의 ‘대안’으로 부상하게 되고 있는 형국이다. 새누리당 인명진 비대위원장도 황 대행에 대해 노골적인 ‘러브콜’을 보냈다. “황 대행이 여권 잠룡 중 가장 높은 지지율을 기록한 것은 국민이 새누리당이 대선 후보를 내도 된다고 허락한 것으로 생각된다”는 것이다. 국민의 여론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는 것이요, 백배 사죄해도 시원찮은 시국에 후안무치한 행태다.
그러나 황 대행이 대통령 후보가 돼서는 안 되는 이유들은 차고 넘친다.
첫 번째, 최순실 국정농단의 책임에서 그는 자유롭지 못하다. 박 정권에서 그는 법무장관과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2인자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그는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가볍지 않은 책임이요, 그 스스로 박 정권의 연장선과 다름없는 것이다.
두 번째, 심판이 선수로 뛰겠다는 것이다. 그에겐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조기 대선 정국을 원활하게 이끌어야 할 책무가 있다. 그것을 도외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대선 후보로 출마하려면 자신의 권한대행직을 스스로에게 사임하고, 또 자신이 그 직을 경제부총리에게 이양하며, 자신이 관리하던 대선판에 나오게 되는, 웃지 못할 상황을 연출하게 된다. 그러면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어마어마한 직함들을 갖게 된다. 대통령 권한대행겸, 국무총리 권한대행겸, 경제부총리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되는 것이다. ‘삼천갑자 동방석…’ 운운의 블랙 코메디다.
세 번째, 그의 출마 자체가 모순의 행보가 된다. 황 대행은 사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책임을 지고 일찌감치 국무총리 자리에서 내려왔었다. 그러던 것이 정치권과 박 대통령의 합의 불발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그가 ‘귀환’했다는 것으로 그의 책임이 면해진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최소한의 권한 행사로 국정을 안정되게 이끌어 가는 것이 맞다. 그러나 그는 번번이 ‘광폭 행보’를 벌여 여론으로부터 질타를 받아왔다. 게다가 ‘대통령급’ 의전을 공공연히 요구해 눈쌀을 찌푸리게 했다. 더구나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황교안의 지지세력은 곧 대통령 지지세력과 다름이 없다. 그 세력이 반대하는 것은 대통령에 대한 헌재의 ‘탄핵 인용’이다. 그런데 그가 후보로 나선다는 것은 자신의 지지세력이 반대하는 탄핵을 용인한다는 것이 된다. 자가당착의 모순이다.
네 번째, 황 대행이 그동안 보여온 말바꾸기, 또는 거짓말도 결격사유가 된다.
황 대행은 지난해 국회의 대정부질문에서 “대통령 후보로 나가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던 것이 신년 기자회견에선 “지금은 국정 정상화가 마땅한 책무다”라며 묘한 뉘앙스를 풍겼다. ‘지금은’이 함축하고 있는 것은 ‘지금은 아니지만 때가 되면 바뀔수도 있다’는 해석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절대로 나가지 않겠다던 자신의 말을 스스로 뒤집는 것이다.
심판이 선수로 뛰는 코메디는 없어야 한다. 최소한의 권한으로 국정을 안정시키고, 대선을 원만하게 이끌어가는 것 만이 그에게 바라는 국민들의 여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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