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훈 <청주시장>

 

1991년 상공부 구주과장으로 있을 때 주한 영국대사관의 마이클 잭슨 부대사가 한국에서 4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남미국가의 대사로 부임하기 전에 마련한 환송연에서 의례적인 인사로 한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외교관이기 때문에 당연히 한국에 대해 좋다는 외교적인 수사가 나올 것으로 예상했지만 막상 그의 입에서 “한국의 미래가 암담하다”는 얘기가 나오자 몹시 당황스러웠다.

그는 “한국 사람들이 정이 많고 친절해 자기 부부 모두 한국 국민을 사랑하지만 한국의 미래에 대해서는 좋은 평가를 해 줄 수 없어 안타깝다”고 하면서 자신의 심정을 솔직히 얘기해 주었다.

첫째, 그는 한국의 촌지문화를 비판하였다.

자신이 한국보다 더 낙후된 여러 국가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데 학교에서 학부형이 자신의 아이만 잘 봐달라고 교사에게 촌지를 주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고 하면서 촌지를 통해 혜택을 받는 경험을 했던 아이들이 자라서 20~30년 뒤 이 나라의 주역이 될 때 과연 공정한 사회가 될 수 있겠느냐고 지적하였다.

둘째, 한국의 지도층들이 자신들의 특권을 힘을 과시하거나 이렇게 부당한 이득을 위해 사용하면서도 부끄럽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데 사회 지도층들의 도덕적 수준이 낮은 나라에서 무슨 희망이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셋째, 주한 영국대사관에 30년 넘게 근무한 직원들이 있는데 그들과 얘기해 보면 한국이 전보다 부유해 졌지만, 윤리적 수준은 오히려 후퇴했다고 한다면서 자본주의가 성숙해지고 물질적으로 풍요해지면 그에 맞춰 윤리적 수준이 올라가야 되는데 그러지 못하면 천민자본주의로 흘러 결국 그 사회가 멸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서구 선진국들은 그러한 문제를 인식해 해결 노력을 전개해 왔는데, 한국은 그러한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면서 이러한 여러 요인들을 종합해 볼 때 ‘한국은 비전이 없는 나라’라고 평가하였다.

당시 젊은 혈기에 지금 당장은 그렇지만 10년이나 20년 뒤 나아질 것이라고 자신 있게 얘기 했는데, 그로부터 35년이 지난 지금 과연 그때보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더 나아졌는지 당당하게 답할 수 없어 안타깝다.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에서는 아들 때문에, MB때는 형 때문에 나라가 시끄러웠고, 참여 정부 때는 대통령이 국회에서 탄핵되는 일까지 있었다. 그러한 정치적인 사건과 함께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됐던 수많은 대형 사고가 있었다. 문제는 그런 사건들이 벌어질 때 마다 큰 진통을 겪으면서 관련제도 개선과 법 개정이 이루어졌지만, 최근의 사태를 바라보면서 그동안 달라진 것이 무엇인지 의문이 든다.

무엇이 문제인가? 왜 그런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사건을 치르면서 공정하고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자고 다짐도 하고 법과 제도를 바꾸었는데도 왜 아직까지 안 되고 있는가?

모든 개선이 그때의 어려운 상황을 일시적으로 모면하기 위한 것이고,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개선 노력을 하지 못했고, 그것에 대한 국민적 참여가 부족했던 것이 중대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위정자들이나 지도층도 각성해야 하지만, 우리 국민들도 스스로의 도덕성을 높여야 한다. 청탁을 통해 사업이나 인사에서 득을 보려는 생각이 있지는 않은지, 쓰레기 불법투기나 불법주차 등 법 스스로를 점검해 보면서 우리 사회의 문제를 나부터 참여해 같이 해결해 나가는 노력을 기울일 때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현안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국이 어지러운 요즘 들어 한 영국 외교관의 지적이 아직도 기억에 새롭다. 그러나 이런 저런 지적과 우려가 결코 적지는 않지만, 우리나라 국민은 현명하기 때문에 하고자하는 결심을 하면 난국을 풀어나가는 지혜로움이 남다를 것임을 나는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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