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수(한국폴리텍대 청주캠퍼스 학장)

▲ 이현수(한국폴리텍대 청주캠퍼스 학장)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람 꼴을 지탱하고 살아가는 비결은 이른바 ‘도덕적 자기검열’이다. 그러나 제 아무리 진보의 외피를 내건 양성평등론자라도 일상 속에서는 여전히 가부장적이며 마초적인 행태를 보인다. 이율배반적이다. 여성에 대한 피아간의 위계를 부당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자기검열의 영역 밖에 둔다. 평등의 중심에 여전히 남성상이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직장 내 여성차별을 예로 들자. 한국사회에서 워킹맘은 여전히 승진, 보직 차별은 물론 육아 문제로 경력단절까지 감수해야 한다. 이러한 현실은 보란 듯이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하는 수년째 최하위인 ‘유리천장지수’로 입증된다. 허나 언론은 시시때때로 ‘여성상위시대’라고 앞서간다.  각종 국가시험에서 여성 수석합격자와 합격률로 양성평등이 도래했음을 지레 짐작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런가? 마초적 감성의 가부장제에서 득달같이 여성혐오로 이전하는 한국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칠거지악으로 강제되는 가부장제는 현존하는 이성적 질서이며 경제적 불황 속에서 실존하는 이데올로기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남성의 삶에 관한 기초연구(Ⅱ)’ 보고서에서 ‘한국은 누구에게 살기 좋은 나라인가’라는 질문에 여성 응답자는 ‘60~70대 남성’(19.7%)과 ‘40~50대 남성’(18.7%)을 가장 많이 지목한 반면, 남성은 청소년(41.3%), 대학생(35.7%), 직장인(32.5%) 모두 ‘20~30대 여성’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보고서는 “남성들이 좌절의 원인을 똑같이 힘든 다른 취약 계층에 돌리는 양상이며 경제 상황이 더 나빠지거나 생존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취업에 좌절한 남성들의 여성을 향한 불만이 더욱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한다. 통탄할 야만의 현상이다.

십여 년 전 연수차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의 보편적 양성평등 일상은 문화적 충격이었다. 스웨덴의 여성 취업률은 알려져 있다시피 주변 북유럽 국가들과 같이 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스웨덴 여성들은 거의 모두가 직업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혼과 출산이 여성의 노동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는 말이다. 여기서 주목할 대목은 좋은 법과 제도가 아니라 제도의 연착륙을 견인하는 양성평등의 사회 분위기이다. 스웨덴은 오랜 시간 시민사회의 함의로 남성의 육아 참여를 이끌어내고 육아휴직을 당연하게 사용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형성했다. 양성평등을 지향하는 사회 기반을 마련하여 높은 출산율을 유지하고 있다. 스웨덴 아빠들에게 육아는 아내에 대한 배려가 아닌 본인이 응당 해야 할 일이다. 그에 반해 한국 여성들은 아이 키우기가 힘들어 아이 낳기를 포기하거나 직장을 포기한다. 육아는 여전히 여성 몫이라는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편견을 깨기 위해서는 우리안의 마초를 검열하는 일이 시급한 이유이다. 세계 최고의 통계석학으로 불리는 한스 로슬링 스웨덴 카롤린스카 의학원 교수는 단순히 인구정책으로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페미니즘을 통한 변화를 촉구한다. 그는 과거와 달리 지금 여성들은 일도 가사도 잘해야 하며 한국과 같이 여성에게 일방적 부담을 지워서는 출산율이 높아질 수 없다고 지적한다. 페미니즘이란 용어에 유구한 남성중심적 문화의 역린을 건드렸다 질색할 독자가 있을지언정 지당하신 말씀이다.

작년 말 행정자치부에서 배포한 ‘대한민국 출산 지도’는 인터넷으로 통계청의 자료를 활용해 출산율, 출생아 수, 조혼인율 등을 지역별로 표시해 볼 수 있게 한 자료다. 애초에 해당 자료를 통해 저출산을 극복하고 출산율을 높일 수 있냐는 데에도 그 실효성에 의문이 들지만, ‘가임기 여성 인구수’를 제시한 정책적 배경에는 가임기 여성이 출산의 책임이 있다는 가정을 전제한 것이다. 대단히 마초적이다.

명절, 우리 사회 가정의 모습 또한 양성평등의 일그러진 자화상의 단면이다. 명절은 가족 공동체의 연대를 확인하는 의례이다. 그러나 명절의 또 다른 이면에는 가족의 구성원을 규율하고 훈육하는 날선 현장이기도 하다. 며느리의 고행을 강요하는 암묵적 분위기가 그러하다. 숨 막히는 시댁의 권위 앞에 차려진 밥상의 호사를 누리며 명절노동으로부터 자유로운 남성들이 대다수인 우리 사회에서 명절노동은 오롯이 여성의 몫이다. 이참에 한국사회 불평등의 주체에서 여성만 오롯이 빠져나오는 단편적 처방보다 작고 많은 소수자 특질을 발견해내는 사회정의로서 양성평등의 담론이 필요하다. 주눅 든 남성상에 대항하는 개념이 아니라 새로운 정의사회로의 이행을 실행하는 단초이다. 여성이 남성과 다름없는 인간이라는 평등의식이 존재할 때, 양성평등은 이해와 실천의 영역으로 들어선다. 우리 스스로가 마초라는 가능성을 인정하고 양성평등은 과업이 아닌 일상의 정의라는 실존적 긴장을 유지하는 것, 세상의 딸들에 대한 반듯한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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