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진탈당 공론화시 당청 충돌·계파갈등 비화 가능성

(동양일보) 새누리당이 조기대선 정국과 맞물려 '박근혜 대통령 자진탈당' 카드로 박 대통령과의 관계 정리를 모색하는 양상이다.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 취임 이래 친박(친박근혜)계 서청원 최경환 의원 등에 대한 중징계 결정을 내렸지만 비박(비박근혜)계를 중심으로 박 대통령의 당적 정리가 인적 청산의 핵심이라는 여론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정우택 원내대표는 지난달 말 청와대 한광옥 비서실장을 만나 박 대통령의 자진탈당 문제에 대한 당의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원내대표는 7일 기자들과 만나 '지도부 논의 결과 대통령이 자진 탈당을 결심하지 않는 이상 인위적으로 탈당시키거나 제명하는 것은 좋지 않겠다는 방침을 정했다"며 "당에서 그렇게 원칙을 정했다는 것을 청와대에 전달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또 "대통령에 대한 예의상 청와대 비서진을 통해 (당의 입장을)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물론 정 원내대표는 "탈당을 권유하거나 강제한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지만 박 대통령과의 관계 정리를 위해 자진탈당이 최상의 방법이라는 지도부 의중을 에둘러 전달한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낳는다.

여기에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박 대통령에 대한 심각한 민심이반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여당 입장에서 자진 탈당은 새누리당과 박 대통령이 큰 마찰없이 관계를 정리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는 기대가 반영됐다는 시각이다.

또 박 대통령을 징계하는 방법이 아니라 대통령 스스로 당적을 정리하는 모양새를 만들면 정권 재창출을 위해 박 대통령 지지층까지도 껴안아야 하는 고민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정 원내대표는 "청와대는 알아서 결정하겠다, 시점 등은 맡겨달라고 했기 때문에 언제 될지, 실행될지는 모르겠다"며 "우리는 청와대에서 판단해주길 바란다는 취지였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새누리당의 탈당 요구에 대해 "처음 듣는 얘기"라는 반응 속에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최순실 수사'와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당적 문제에 대해 신경 쓸 틈이 없다는 분위기다.

청와대 관계자는 "지금은 대통령의 당적 문제를 얘기할 상황도 아니고 탈당해야 할 상황도 아니다"고 말했다.

이런 기류에는 탈당에 대한 박 대통령의 부정적 인식도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박 대통령은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뒤 야당은 물론 여당 일부에서 탈당 요구를 받았지만 현재까지 새누리당 당적을 갖고 있다.

박 대통령이 자진탈당을 거부하고 새누리당이 공개적으로 탈당을 요구하면 당청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지만 당내에서는 박 대통령의 판단을 지켜보겠다는 기류가 우세하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당적이 조기대선 정국의 쟁점으로 부상하거나 당내 비박계가 탈당을 공식 요구할 경우 친박계와의 계파 간 갈등으로 비화할 소지도 있다.

한 친박계 의원은 "헌재의 탄핵심판 결정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시기적으로 이런 얘기가 나오는 것을 맞지 않다"며 "보수층 기류도 많이 바뀌고 있기 때문에 적어도 헌재 결정까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지도부에 불만을 표시했다.

이인제 전 최고위원도 한 라디오에 나와 "참 비겁한 행동"이라며 "아들이 잘못했다고 호적에서 파내면 그게 아들이 아니냐"고 비판했다.

김명연 수석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당 윤리위는 박 대통령에 대한 징계는 탄핵이 결정될 때까지 보류한다는 원칙을 정했고 이것이 공식 당론"이라며 "이 원칙은 지금까지도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자진탈당 여부와 무관하게 박 대통령에 대한 징계는 사실상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한 것으로서, 마치 당 지도부 차원에서 대통령을 압박한 것처럼 비치는 것을 경계한 것으로 해석된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취임한 5년 단임제 대통령 중 이명박 전 대통령을 제외한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은 모두 임기말 지지율 하락과 여당과의 갈등으로 인해 탈당하는 오명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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