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현 <화가·운호중 교사>

 

잔은 비워야 한다고 합니다. 채울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있기에 비움의 미학이 존재하는 거겠지요.

장석주는 ‘느림과 비움의 미학’에서 장자를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장자가 존경받는 이유는 비움과 낮음의 자세로 살았다는 것이고 그의 위대함은 그런 삶이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주어진 것이 아닌 자신이 선택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장자는 자연스러움에 대해서도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말고, 오리다리가 짧다고 늘여 주지 말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사물은 본래 다 이유를 가지고 타고났음을 그리고 그것이 가장 자연스럽다고 편하다는 설명입니다.

노나라 임금이 바닷새를 불러다가 고기를 먹이고 잔치를 베풀어도 바닷새는 결코 즐겁지 않았고 나중에 죽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인위적인 어떤 행동이 결코 대상을 위하는 길이 아님을 말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시작부터 엉뚱한 무위자연 이야기 같지만 작은 찻잔 하나가 사람의 관계를 이렇게 연결하고 만들고 변화를 줄 수 있구나 하는 경험은 나에게 큰 기억으로 있고, 오래도록 갈 것 같아 글로 남겨 보려합니다.

얼마 전 오래된 우리의 공간에 낮선 한 남자가 왔습니다. 15개의 문과 450여개의 입이 있는 공간입니다.

나는 새로운 공간과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어색해할 그에게 줄무늬가 있는 찻잔을 선물했습니다. 조금은 당황해 하면서도 조금은 낮선 표정으로 나를 한참 보았습니다.

며칠 후 그는 나에게 내가 선물한 그 찻잔에 귀한 차를 끓여 내주었습니다. 차는 찻잔에 그어진 줄을 넘지 않았습니다.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비워지면 꼭 그만큼만 차를 채웠습니다. 이야기도 그 선만큼 나누고 비웠습니다.

그는 P입니다. 그가 선택한 낮 설고 어색한 공간에 적응하기 위해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 P는 내가 선물한 작은 잔에서 사람 사는 아름다움과 향기를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빠르게 적응을 했습니다. 우리는 배척과 시기로 채워진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 공간에 누군가가 우리의 공간을 차지하면 불편해 합니다.

그런 공간 내에서 이제는 P가 나를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서로를 발견하고 둘은 서로안의 빈 공간을 채워가며 차향만큼이나 강한 남자들의 향기로 공간을 변화 시켜갔습니다.

P와 나는 같은 공간에서 다른 생각을 하지만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창의적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일들을 좋아했습니다. 욕심으로 하는 일이 아닌 스스로를 비워가며 서로를 채우려는 노력들이 쌓여 갈수록 이미 둘의 비움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이가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교육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공간은 교육공간이고 비움은 피 교육자의 채움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교육은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나타나는 것은 차이가 아니고 다름이므로 이 모든 것을 인정하고 수용하며 앞으로 무엇을 제공해야 할 것인지를 바라보는 미래 안이 있어야 합니다.

교육은 교육자가 어느 위치에 있건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자연스러움 안에서 그릇을 두고 채워야 합니다. 인위적이고 내안에서의 틀을 고집하는 것은 어색한 채움입니다. 교육은 스스로를 채우는 것이 아닌 피교육자를 채우는 것입니다.

첫 만남에서의 선물인 찻잔하나에서 시작을 했지만 한 공간에서 교육을 해 나가는 새로운 비움의 미학을 발견했습니다. 그렇게 빈 찻잔에서도 차의 향기는 오래 남아 있습니다. 나는 이것을 찻잔의 인간학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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