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팔(논설위원/소설가)

▲ 박희팔(논설위원/소설가)

지난날엔 기찻길 옆과 아기와의 상관관계에 대한 말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때가   있었다. ‘기찻길 옆 오막살이 아기아기 잘도 잔다.’ 하는 동요가사라든가, ‘기찻길 옆의 집엔 아기들이 많다.’는 것  등이 그것이다. 아홉 살 난 운성이가, 앞엣것은 동요라 기차가 지나가는 덜커덩덜커덩 소리와 삐익 삑 하는 기적소리가 시끄러워도 아기는 이에 습관이 돼서 깨지 않고 잘도 잔다. 는 건 알겠는데, 뒤엣것이 영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서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 왜 기찻길 옆에 있는 집엔 아기들이 많어유?” “야 이녀레 자슥아, 별 해괴한 소릴 다 묻네. 기찻길 옆집이 아니래두 우리 집은 애들이 일곱 아니냐. 거 다 헛된 소리다.”  자신이 형제 가 많기 때문에 기차와 무슨 상관관계라도 있는 것인가 해서 물어보았던 것인데, 그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아버지의 핀잔어린 대답에 그만 머쓱해 버렸다. (나중에 성인이 됐을 때, 그게, 밤에 기차가 지나가는 시끄러운 소리에 잠이 깬 부부가 하릴  없어 애만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우스갯소리라는 걸 알았다.) 그만큼 운성인 형제가 많았다. 위로 누나가 둘, 형이 둘 그리고 아래로 남동생이 하나 여동생이 하나 해서 일곱 중 다섯째다. 온 식구가 달랑 너마지기 논 그것도 소작농에 매달려 사는 집이라 아버진 집 농사일보다는 남의 집일을 더 많이 다녔다. 이걸 운성인 끼니 해결방법의 기회로 삼았다. 남의 집 일하러 가는 아버지를 따라나서는 것이다. 그러면 주인집에서 아침과 점심 사이에 철에 따라 감자, 고구마, 옥수수, 빈대떡, 수제비, 손국수…등등의 곁두리(농사짓는 일꾼이 끼니 외에 참참이 먹는 음식)가 나온다. 그리고 점심때가 되면 정식으로 점심밥이 나온다. 그리고 또 점심과 저녁 사이에 곁두리가 나오고, 어떤 땐 일이 늦어져 저녁때가 되면 정식으로 저녁밥을 주인집에 가서 먹기도 한다. 이걸 바라고 운성인 눈치코치도 없이 악착같이 아버질 따라가는 것이다. 시골인심이 논일 밭일을 할 땐 지나가는 나그네도 불러 같이 먹는 터라 객꾼인 어린 운성이가 끼어드는 걸 나무라거나 싫어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러는 걸 아버지 엄마는 눈감아 주는데 형 둘은 못마땅해 했다. “야, 우리가 거지냐 눈치코치도 없이 얻어먹게.” “난 그렇게 못해. 너 그러지 마, 안 보는 데선 주인집에서 욕해.”할라치면, “난 굶는 거 싫어. 배고픈 거 싫단 말야!” 딱 잘라 말하곤 여전히 그러는 거였다. 그런데 하루는 점심때 숟가락을 놓던 주인이, “일꾼들에 맞춰 와서 네 숟가락은 없는데 어떡하지.” 하는 게 아닌가. 그 소리를 듣자 운성인 집으로 내달았다. 그리곤 부엌으로 들어가 부리나케 제 숟가락을 찾아 길쭉한 숟가락총의 절반을 뚝 잘랐다. 그리곤 그 동강숟갈을 들고 현장으로 갔지만 이미 밥그릇을 다 치우고 난 후였다. 이후 운성인 그 동강숟갈을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유사시에는 ‘나도 숟가락 있다’ 하면서 달려들어 끼니를 때우곤 했다. 내 배를 곯지 않으려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운성이 열두 살 때 하루는 집에 들어오니 낯선 어른이 와 있었다. 먼 일가친척이라는데 큰형이나 작은 형 중에 하나를 양자로 달라는 중이었다. “알다시피 우리 집에 오면 배는 안 곯네. 학교도 보낼 것이고 나중엔 내 재산 모두 제 앞으로 되는 걸세.” 그런데도 아버지와 엄마의 심각해하는 표정이 뚜렷하고 두 형들도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운성인 이런 조건에 미적댈 수가 없었다. “내가 갈 께유.” 선뜻 나섰다. “어허, 제가 자진하니 신통하구먼.” 그는 만족해했다. 이래서 운성인 그 집 양자로 들어갔다. 양아버지 말따나 농토가 꽤 있어 배는 곯지 않게 된 건 물론, 오히려 생가의 경제를 다소 돌보게 됐고 학교도 늦은 나이에 초등학교도 마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운성이 성인이 돼 장가가서 아들 둘 딸 하나를 낳았으니 양자로서의 할 일을 충실히 해냈다.
 그 운성이 큰아들이 중학교 고등학교짜리 자식들을 앞에 앉혔다. “니들 이게 뭔지 아느냐?” 그는 동강숟갈을 애들 앞에 내놓아 보인다. “이거 옛날 숟가락 같은데요.” “그런데 왜 부러져 있어요?” “이거 어디서 났어요?” 모두 의아해 하며 한마디씩 한다. 그는 지난날 아버지에게서 들은 이에 얽힌 사연을 아이들에게 차근차근 얘기해 주었다. 그리곤 덧붙인다. “이게 우리 집 가보 일호다. 큰애 너는 이걸 받아 소중히 간직해야 하고, 니들 모두가 우리 할아버지께서 이랬다는 걸 잊지 말고 열심히 살아가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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