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이(동양일보 편집상무)

▲ 김영이(동양일보 편집상무)

평범한 가정주부의 기준은 무엇인가. 최순실이 평범한 가정주부라는 말에 동의하는 진짜 평범한 주부들은 얼마나 될까.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씨를 평범한 가정주부로 생각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지난 3일 헌법재판소에 낸 ‘탄핵소추 사유에 대한 피청구인 입장(준비서면)’이라는 의견서에서 이같이 적시했다. 박 대통령은 서면에서 “혼자 사는 여성인 피청구인(박 대통령)에게 필요한 의상 등 세세한 일들을 도와주고 시중에서 벌어지는 일이나 풍문을 귀띔해 주었다”며 “최 씨가 과거 유치원을 경영한 경력이 있지만 평범한 가정주부로 생각했고 여러 기업을 경영한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 말을 믿을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 거짓말이다.
아마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등이 최씨에게 속아서 벌어진 일이라는 것을 강조하려다 보니 40년 지기인 최 씨를 평범한 가정주부로 알고 있었다고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최씨가 연설문을 비롯해 청와대 문서에 개입한 이유에 대해서도 박 대통령은 “(청와대) 비서진들이 본인의 언어습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라며 “비서진들이 업무에 능숙해지면서 최씨의 의견을 들어보라고 하는 경우도 점차 줄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피청구인은 그런 과정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했다. 해석하면 말귀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비서들을 썼다고도 들린다.
어이가 없다.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다.
박 대통령의 현실 인식과 상황판단 능력에 분명 문제가 있어 보인다. 최씨가 평범한 가정주부라는 박 대통령의 말을 빌자면 한 가정을 꾸려 남편과 자식들을 보살피며 헌신하는 대한민국의 진짜 평범한 가정주부들은 뭔가. 박 대통령의 생각대로 최 씨와 비교하면 이들은 평범한 가정주부가 될 수 없다.
지금 대한민국은 혼돈 그 자체다. 보수와 진보 진영으로 갈린 나라는 서로 삿대질만 해대며 싸움이나 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곁에 둔 최순실이라는 사람이 좌지우지한 국정농단이 비극의 시작이다.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이라는 특검의 공식명칭이 한마디로 요약해 준다.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는 최순실이 박근혜 정부의 국정에 개입했고, 미르재단·K스포츠재단을 설립해 그 재단을 사유화하고,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이대와 삼성 등에서 특혜를 받은 사건으로 요약된다.
평범한 가정주부라면 미르재단 설립 당시 삼성, 현대, LG, SK 등 기업 30곳으로부터 어떻게 수백억원을 기부받을 수 있으며 평범한 가정의 딸이라면 정유라처럼 이화여대에 특혜입학이 가능했겠는가.
또 평범한 가정주부가 대통령의 연설문을 손보는 일을 즐긴다는 것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오죽했으면 이원종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국회에서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얘기”라며 펄쩍 뛰지 않았나. 그러나 최순실이 버리고 간 태블릿PC에는 44개의 대통령 연설문이 들어 있었고 연설문 수정사실이 확인됐다.
최씨는 이밖에도 생뚱맞은 사람을 대사로 임명하는데 개입하고 박 대통령 옷값 지불 의혹의 중심에 있다.
황당한 것은 자신의 불륜사실을 고백하고 나선 것이다. 61세 할머니인 최 씨가 법정에서 20세 연하인 고영태씨와의 불륜을 스스로 주장, 국민들을 아연실색케 했다. 남들이 불륜을 의심하면 일단 아니라고 부정하고 나오는 게 세상 사람들의 심리인데 되레 최 씨는 불륜을 자폭했으니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막장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20세 연하 남자와의 불륜을 들춰낼 때는 뒤에 숨기고 싶은 뭔가가 있을 거다. 자극적인 불륜관계를 끄집어내 국민들 눈을 흐리게 만들려는 의도로 의심받기 충분하다.
그런데 국민을 분노케 하고 상실감에 빠뜨린 주범이 평범한 가정주부란다. 이 평범한 가정주부가 특검에 불려가면서 민주주의 운운하자 청소아줌마한테서 쓴소리를 들었다. 최씨의 국정농단 사례는 수없이 터져 나오고 있다. 그런 사람이 박 대통령의 눈에는 평범한 가정주부로 보였다니 대한민국의 평범한 가정주부 기준을 다시 만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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