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기황(시인)

▲ 나기황(시인)

총회의 계절이 돌아왔다. 그러잖아도 못갖춘마디처럼 일수도 적은 달인데 이런 저런 모임이 시작되면 2월은 온데 간 데 없어진다. 그새 입춘(2월4일)도 지났다.
환절기에 돌림병처럼 날아드는 부고(訃告)까지 쫒아 다니다 보면 언제 집 밥을 먹어봤는지 가물가물하다. 주말에도 이런 저런 애경사에 동호회 모임에 쫒기다보면 모임에 치어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어렵다는 불평이 나올 만하다. 
모임은 왜 생겨나는 걸까?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또는 어쩔 수 없이 생겨나는 게 모임이다. 문제는 모임이 사회생활의 외연을 넓히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 부가적인 활동이 
아니라 언제부턴가 이해관계와 효용을 따지는 삶의 중심으로 자리를 옮겼다는 사실이다.

네덜란드의 역사학자이자 문화평론가인 호이징가(Huizinga)는 인간은 생존을 위해 본능적으로 무리를 짓는 동물의 경우와 달리 ‘놀이하는 인간’으로서 ‘호모 루덴스(Homo Ludens)’란 개념을 만들어냈다. 놀이와 모임을 동의어로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지만 놀이와 모임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특성 면에서 상당한 연관성을 발견할 수 있다.
키워드로 보면 ‘자유스러움’과 ‘탈일상성(즐거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인데 모임(회합)은 본질적으로 즐거움을 추구하는 자발적인 행위다. 애초에 경쟁적이거나 유용성을 전제로 하지 않는 모임의 경우가 훨씬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정 목적을 가진 집회나 대회가 아닌 일반모임에서 자칫 모임의 본질이 흐려지는 경우를 자주 접하게 된다.
첫째 가입과 탈퇴가 자발적이고 자유스러운 분위기가 영 아니라는 것이다.
사회활동과 살아온 이력에 따라 자동적으로 가입되거나 반강제적으로 소속되는 경우가 많다. ‘모임 천국’인 대한민국 사회에서 모임 없이 사는 게 쉽지 않다. 모임에 소속되어 ‘자유스러움’과 ‘즐거움’을 기대하는 것은  당연하고 개인적인 선택의 영역임에도 탈퇴가 자유로운 경우는 거의 없다.
아무리 아리고 쓰린 구석이 없다 해도 왠지 배신자가 된 것 같은, 뭔가 잘못해서 쫒기여 난 것 같은 소외감과 근거 없는 쑥덕거림을 견딜만한 배짱과 결단이 있어야 한다.

모임에서 벌어지는 해프닝도 가지가지다.
임원진 구성이 어려운 모임도 상당하다. ‘영양가’ 없는 모임일수록 정도가 심하다.
(스스로의 기대치에 의한)잇속에 못 미친다 싶으면 한발 빼는 통에 억지로 떠밀려 맡게 되고 그나마 나무에 올려놓고 뒤 담화로 흔드는 꼴이니 조직에 무슨 활력이 있고 희망이 있겠는가. 가장 큰 병폐가 패거리를 만드는 것이다.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된다는 편견도 버려야 한다. 섬김의 정신없이 본인의 취향대로 끌고 가려는 잘못된 리더십도 조직을 와해시키는 요인이다. 회비 내는 일이며 회합 참여하는 데는 인색하고 남이 심어놓은 과일나무에서 과실만 취하겠다는 태도도 버려야 할 악습이다.
주최 측의 체면을 위해서, 행사비충당을 위해서, 인원동원을 하는 모양새도 불편하다.
회장이라면 적어도 얼마를 내놔야하고, 누구 있을 때 기금을 얼마를 만들어 놓고 식의 촌스런 인식이 모임을 괴사(壞死))시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총회의 달, 본격적으로 모임이 시작되는 2월이다.  내키지 않는 모임도 있고, 부담 가는 행사도 있다. 본질을 잊으면 즐거워야 할 모임이 자칫 독(毒)이 될 수 있다.
전에 쓴 칼럼제목을 다시 한 번 인용하고 싶다.
“반가워야 모임이고, 즐거워야 행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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