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갑 <충주시의회 의장>

 

어느새 따뜻한 차 한 잔이 그립고 창밖으로 내리는 눈을 지켜보며 세상 스케치하는 재미가 있는 계절이 됐다. 창밖 농촌 풍경을 돌아보니 웬만한 길들은 모두 아스팔트 포장도로로 전부 변했다.

하지만 50년 전 그 옛날 어릴 적 내 고향 시골길은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시내에 나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려면 시골버스에서 내려 20여리를 걸어 호롱불이 켜질 때쯤 마을에 들어설 정도로 아주 멀었다.

이렇게 하늘만 빠끔한 산골에 살다가 중학교를 도회지로 진학하며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면했고, 나의 ‘세상살이 오뚝이 인생’은 시작됐다. 지금은 ‘걱정 없이 자란 신사 같다’는 말을 자주 듣지만 실은 어릴 때부터 가정형편이 어려워 고생을 달고 살았다. 중·고등학교를 다니며 신문배달과 우유배달 등 아르바이트를 하며 줄곧 자취를 했고 학비가 모자라 걱정거리가 많았다.

그러던 중 생각지도 못했던 고마운 선물을 받았다.

고등학교 은사인 조용진 선생님께서 딱한 사정을 듣고 자격증을 따려는 학생들을 모아 과외교습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것이다. 과외교습을 하면서부터 함께 공부하는 보람도 있었고 여건도 좋아져 무사히 학업을 마칠 수 있었다.

가슴을 울린 사건이 하나 더 있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공무원 시험에 합격까지 했으나 출근하는 첫날 사직서를 냈다. 여기에는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맺히는 사연이 있다. 친구들은 내가 가정형편이 어려워 공무원을 한다고 하니까 만류를 했다.

급기야 친구들은 부모님을 찾아가 “종갑이는 공부를 잘 하니까 대학에 가서 더 배워 성공했으면 좋겠다”며 코 묻은 돈을 거둬 학비로 써달라고 건네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부모님께 친구들의 얘기를 전해 듣고 ‘친구들도 대학을 가지 못 하는 형편인데….’라는 생각에 눈물이 핑 돌았다.

결국 열심히 배워 값지게 보답하리라 마음먹고 대학에 진학하게 됐고, 이 일은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Turning Point)’가 됐다.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했던가?

갖은 고생을 하며 얻은 교훈이 ‘조금 손해 보는 듯이 살자’였고, 그렇게 해보니 마음도 편하고 일도 잘 풀려 이 말은 평생 좌우명이 됐다. 이런 삶의 경험은 어느 누구와도 소통하고 대화할 수 있는 재산이 됐을 뿐만 아니라 어려울 때마다 오뚝이처럼 일어서는 원동력이 됐다. 그러나 살면서 고마운 친구를 찾아봐야지 하면서도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다보니 벌써 두 명의 친구는 유명을 달리해 고마움을 갚을 길이 없어 마음이 아프다.

우리나라는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으로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앞두고 있다. 경제적으로 풍족해 사실상 선진국 대우를 받고 있지만, 오히려 정신적으로 가난한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행복이란 넘치는 것과 부족한 것 중간쯤에 있는 조그마한 역(驛)이고, 사람들은 너무 빨리 지나가기 때문에 이 작은 역을 못보고 지나간다고 한다. 앞만 보고 바쁘게 달리기 보다는 주위를 살피고 자신도 돌아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제 살면서 주어진 일에 충실하면서 마음속의 은사님과 마음속 친구들의 이름으로 어려운 이웃들이 배를 곯지 않도록 살피는 일로 갚아 나가려고 한다.

“지금까지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삶의 나침판을 선물해 주신 조용진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그리고 보고 싶은 친구들아, 종갑이는 너희들이 고맙다, 정말 고맙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