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창선 (시인)

▲ 노창선 (시인)

소더비 경매에서 2012년에 판매된 그림이 위작으로 판명되어 다시 한 번 시끄러웠다. 소더비는 구매자에게 대금 전액을 반환하고 뉴욕주 지방법원에 그 미술작품 수집가를 대상으로 판매대금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한다. 16세기 작가의 작품인데 20세기에 발명된 안료가 사용된 것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소더비가 그렇다면 세상에 믿을만한 것이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차라리 모작(模作)을 걸어놓고 안도하는 법이 나을 법하다. 순 진짜 참기름의 원리와 같다고나 할까? 믿을 수 없다면 아예 값이 저렴한 수입산 참기름을 사먹는 것이 현명한 일인지도 모를 일이다.
  어떤 미술관에서 제작된 달력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고급진 포장도 포장이지만 한 장 한 장의 그림들이 원화 못지않는 느낌을 주고 있었기에 액자를 만들 것도 없이 몇 해를 벽에 걸어 놓고 즐기고 있다. 그 중에서도 8월의 그림인 김환기의 <하늘과 땅>을 나는 제일 좋아한다. 푸른색의 심원함이 정신을 청정하게 깨쳐주는 느낌이 들어 좋다. 봄부터 가을의 문턱까지 걸어놓는다. 가을이 되어도 겨울이 되어도 그 푸른색은 따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따듯한 푸른색-아이러니한 감이 있지만 싫지 않다. 그러나 변화를 위하여 가을이 되면 따듯한 색이 두드러진 장욱진의 <자동차가 있는 풍경>을 건다. 1976년 민음사에서 나온 그의 수필집 <강가의 아틀리에>를 읽고 머릿속이 참 많이도 감성적으로 움직여지곤 했던 기억이 난다. 그 때가 이십대 중반이었으니 어언 사십여 년 전의 일이다. 원작에 가까운 모작을 만나면 거기서도 아우라를 느낄 수 있는 것인가. 만족스럽다. 지질과 인쇄의 기술도 중요한 것 같다.
  천경자의 미인도는 아직도 결론이 나지 않았다. 국립현대미술관 측은 진품이라고 답을 내린 상태다. 한때 작가는 “내 작품은 내 혼이 담겨 있는 핏줄이나 다름없습니다. 자기 자식인지 아닌지 모르는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나는 결코 그 그림을 그린 적이 없습니다.”라고 자기 작품이 아니라 주장하였으나 소장 미술관 측은 부정했다. 진품이라는 것이다. 위조범  권모씨가 자기가 그렸다고 실토하기도 하였지만 그 조차도 묻혀버렸다. 프랑스 전문 감정 업체인 뤼미에르 테크놀로지도 위작 가능성에 비중을 두었으나 이도 묻혀가고 있다. 최근에는 천화백이 “미인도는 위작”이라는 자필 공증 확인서가 공개되기도 했다.
  조영남의 화투 시리즈 논쟁도 웃기는 사건이다. 정말 짜고 치는 고스톱 같은 이야기다. 그 분이 천하의 장난꾸러기라고 생각하면 한바탕 웃고 말 일이지만 비싸게 작품을 구입한 사람들이라면 정말 열 받을 일이다. 그 통에 유투브에서 그의 노래를 실컷 들었다. 역시 그는 진짜 가객이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관장을 지낸 토머스 호빙은 그 미술관 소장 작품의 4프로는 위작일 가능성이 있다고 토로할 정도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 시대의 산업이, 역사가, 사회가 위작 투성이라고 보아도 될 것이다.
  이미지의 시대다. 마음속에 감각 경험의 복사 또는 모사(模寫)로 남는 찌꺼기에 의해 판단이 흐려질 때 우리는 기만당하는 체험을 갖는다. 대통령 같은, 진짜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추상적 이미지가 국정농단에 의한 조작된 이미지였다니 가짜는 어디까지인 것인가 모를 일이다. 몇 년간 누가 대통령였더냐는 물음이 가능한 것이다. 아예 가짜뉴스를 동원하여 일시적 조작된 이미지로 선거가 치러지는 경우들도 우리는 많이 보아왔다. 아니면 말고 식의 사건들. 그러나 이미 상황은 끝나고 소송과 고소로 이어지는 경우 어떤 답이 나와도 결과는 돌이킬 수 없고 벌써 역사는 저만큼 흘러가 버린 것이다.
  가짜뉴스의 이미지 조작은 미국의 대선판을 흔들었고 앞으로 한국의 선거전에서도 믿거나 말거나 식의 소문 또는 거짓들이 팩트의 검증없이 떠돌아다닐 것이다. ‘페이크 뉴스(Fake News)’라는 가짜뉴스를 만드는 앱까지 등장하였다니 우스운 세상이라고 넘겨버리기에는 위험한 요소들이 많기도 하다. 당장 탄핵에 관하여도 가짜뉴스가 돌기도 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일로 언론과 정치 현실에서 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그야말로 가짜와의 전쟁을 선포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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