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막장드라마 같은 공포정치의 끝은 어디인지 지난 4일부터 시행에 들어간 북한인권법을 무색케 하고 있다. 김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이 지난 13일 오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북파 공작원으로 보이는 여성 2명에 의해 독살됐다.
이들 여성 용의자는 범행직후 택시를 타고 도주했다고 한다. 말레이시아 현지 경찰은 테러 용의자를 북한 여성 요원으로 보고 추적중이나, 일각에선 이들이 베트남 출신이란 추측도 있다. 아무리 테러 국가라 해도 이복형까지 독살 한 것은 공포정치의 끝이 어디인지 가늠할 수 없게 한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반드시 테러범을 체포해 살해 동기와 배후를 밝혀야 할 것이다. 김정일의 장남인 김정남은 2009년 후계구도에서 밀려난 뒤 끊임없이 신변 위협을 받았다. 2010년엔 중국 베이징에서 북한의 암살 공작으로부터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것으로 알려졌다. 오죽하면 2011년 김정일이 사망했을 때도 목숨을 잃을까 두려워 아버지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했을까. 2013년 말 장성택이 처형된 후에는 ‘김정남 망명설’까지 돌았다.
김정남에 대한 독살 테러는 김정은식 공포정치의 막장 드라마나 다름없다. 국가정보원은 김 위원장이 집권한 이후 인척인 장성택은 물론 김용진 내각 부총리 등 당·군·정 간부 100명을 처형했다고 지난해 발표했다. 김 위원장이 간부들을 잔인하게 처형한 이유는 그를 무시했다거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충성심, 거만한 태도 등이었다고 하니 기가 막힐 뿐이다.
독살 테러와 미사일 발사 실험에 이은 김정은의 다음 표적은 대한민국일 수 있다. 우리 당국으로선 독살 테러의 진상 파악이 우선이며, 혹 대한민국의 안보에 미칠 영향은 없는지 예의주시해야 한다. 또 북한의 반인륜적 만행에 대해 가장 강력한 수준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김정은식 공포정치는 어떤 경우든 인류 보편의 가치인 인권을 유린하는 범죄행위다. 국제사회는 꾸준히 북한 당국에 의한 인권유린 실태를 고발하고 규탄의 목소리를 내왔다. 이에 비해 남북 협력과 화해에 주안점을 뒀던 과거 정부에선 북한 인권 문제를 거론하는 것 자체를 꺼려 왔던 게 사실이다. 이런 와중에 지난달 30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북한인권법 시행령이 지난 4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이 법은 2005년 국회에서 처음 발의됐지만 우여곡절 끝에 11년 만에 빛을 봤다. 북한 인권기록센터를 만들어 북한 당국에 의해 자행되는 인권범죄를 체계적으로 기록해 처벌 근거로 삼고, 북한 인권재단을 통해 북한 주민의 인권 증진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지원하는 것이 법의 골자다. 이 법에 근거해 북한 당국에 의해 자행되는 인권범죄를 기록하고 공개하는 방식으로 인권을 매개한 대북압박도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자국의 북한인권법에 따라 지난해 12월 6일 미 의회에 북한의 인권유린 실태를 나열한 인권보고서를 제출하면서 김 위원장을 포함해 개인 15명, 기관 8곳의 제재 명단을 공식 발표한 바 있다. 정부도 탈북민 면접조사 등을 토대로 북한 내 인권범죄 기록을 축적해 인권범죄와 관련한 인물을 공개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인권범죄를 기록·축적하는 것은 미래의 형사 소추 대상을 정한다는 의미가 있다. 그만큼 북한 내 인권범죄 가해자들에게 심리적 압박이 될 수 있고, 주민들에 대한 인권침해를 방지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인권범죄자는 통일 이후 처벌할 수 있고 통일 이전이라도 국제형사재판소(ICC) 제소가 가능할 수도 있다. 북한인권법은 북한 주민의 인권이 실질적으로 개선되도록 우리 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계기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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