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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에세이- 초임지에서 만난 그리운 얼굴
동양에세이- 초임지에서 만난 그리운 얼굴
  • 권수애
  • 승인 2017.02.19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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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수애 <충북여성재단 대표>

도로 포장이 안 된 자갈길을 터덜거리며 달리는 버스 속에서 소음과 먼지는 그래도 참을 만한 것이었다. 안전벨트도 없는 버스에 앉아 있다가 가끔씩 머리가 천정에 닿을 만큼 펄쩍 뛰었다 내려올 때는 척추를 다칠 위험도 컸다. 좌석에서 이탈하지 않으려고 옆에 달린 팔걸이에 의지해 안간힘을 써 보지만 옆 사람에게 몸이 쏠려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미안하다는 표현을 여러 번 반복해 가며 1시간 50분을 달려 나의 첫 직장이 있는 교육청에 당도하였다. 교사 임용시험에 합격한 후 6개월 만에 군청소재지 여자 중·고등학교에 발령 받았다.

학교에 도착해 교장실에 인사를 드리러 갔더니 2학기가 이미 시작되었고 담당교사가 얼마동안 결원이었기 때문에 바로 수업에 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곧바로 준비도 없이 고등학교 3학년 교실로 안내받아 소개 인사를 마친 후 교단에 섰는데 눈앞이 캄캄했다. 불과 서너 살 차이에 나보다 덩치가 더 큰 학생들의 짓궂은 질문세례에 수십 분을 두려움에 떨며 첫 수업을 마쳤다. 첫인사말을 어떻게 했는지? 학생들의 질문에 어떤 답을 했는지? 아무 생각이 나지 않고 진땀만 흘렸다. 지금도 그 때의 당황스럽고 부끄러웠던 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이렇게 시작된 나의 교직생활. 매일 교재연구를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해 업무를 배웠지만 무경험에서 오는 실수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대입 학력고사가 끝나고 난 후, 생활관이 없어 교실 한편을 비워 만든 공간에서 예절실습을 대신했다. 여러 책을 보고 익히며 시범을 보여야 하는 내용은 거울을 보며 많은 연습을 한 후 학생들에게 가르쳤다. 전통 절 연습 시간, 한 학생이 참여하지 않고 뒤로 빠져 있기에 주의를 주었는데 못하겠다며 거칠게 항의를 했다. 예기치 않았던 반응에 영문을 몰라 놀랍기도 하고 기분이 언짢았다. 수업을 마친 후 학생을 따로 불러 그렇게 행동한 이유를 물어도 묵묵부답 고개만 숙이고 있어 답답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선배선생님이 제게 눈짓을 하시더니 학생을 데리고 가서 상담을 하셨다. 잠시 후 그 선생님은 학생의 임신 사실을 알려주었다. 충격적인 사실에 나는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문제를 잘 풀어 보자며 선배님은 학생의 남자친구를 불러 확인한 후 사실대로 부모님께 이야기 할 것을 주문하셨다. 퇴근 후 두 학생의 집으로 가는 길에 아무도 적막을 깨지 못하고 걷기만 했다. 갑작스러운 가정방문에 어리둥절하던 부모님들이 사유를 듣고는 무척이나 난감해 하셨다. 골똘하게 생각하던 남학생 부모님이 먼저 말을 꺼내셨다. 당장 혼례를 치르지는 못하지만 며느리로 인정하고 다음날부터 집으로 데려가 안전하게 해산을 돌보겠다며 걱정 말라고 하셨다. 여학생의 부모님과 우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고개 숙여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당황스러웠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에게 조차 불편한 내색하지 않고 진심으로 이해하고 넓은 가슴으로 안아주시는 부모님의 사랑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 해 봄, 젊은 조부모가 되었던 그분들의 포용력과 현명한 결정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선배 선생님의 남다른 관찰력과 판단력 그리고 학생의 비밀을 유지하기 위한 기지가 감탄스러웠다. 머리로 알고 있는 지식이 경륜에서 오는 지혜와 따스한 마음을 따를 수 없음을 실감하였다.

이듬해는 중학교 3학년 담임을 맡았다. 모심기가 한창인 6월, 전교에서 수석을 다투던 반장이 모심는 날이라고 조퇴를 신청하였다. 입시를 앞두고 수업을 빠져가며 일손을 거두어야 하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나는 조퇴를 거절했고 학생은 눈물을 보이며 교실로 돌아갔다. 이를 지켜보던 옆자리 선생님이 그 학생이 집에 가서 새참을 준비하지 않으면 곤란한 형편이니 허락해 주라고 하셨다. 학생의 사정을 듣고서는 개개인의 상황을 잘 파악하고 헤아려 주는 것이 생활지도의 기본임을 깨닫게 되었다. 어려운 가정형편에 오랜 투병생활을 하던 그녀의 아버지는 어머니 혼자 고생하는 것이 안타까워 그녀의 진학을 반대한다고 했다. 밤늦도록 공부하는 것을 말리려고 전등불도 켜지 못하게 하는 아버지를 피해 장독 위에 촛불을 켜고 밖에서 공부하는 집념이 대단한 아이였다. 여러 선생님들의 배려와 격려에 힘입어 그녀는 수석으로 졸업하고 명문고교에 장학생으로 진학하였다. 그런 선생님들께 감사하다며 졸업식 전날 그녀의 어머니가 손수 만든 떡을 시루 째로 보내셨다. 작은 케이크 크기였지만 어떤 물건에도 비할 수 없는 값진 의미의 선물이었기에 차마 먹지 못하고 서로 얼굴만 쳐다보았던 기억이 새롭다. 50대 중반이 넘었을 그녀는 틀림없이 훌륭한 사회의 역군이 되어 있을 것이다.

초임지에서 만났던 선생님들에게서 많은 지혜를 배웠다. 학생들과 함께 보낸 시간들은 좋은 추억이고 소중한 경험으로 간직하고 있다. 향우반별로 새벽 청소를 하고, 며칠 밤을 새워가며 경쟁적으로 교실환경을 꾸미고, 체육대회와 소풍에서 장기를 자랑하던 얼굴들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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