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희 팔(논설위원/소설가)

▲ 박 희 팔(논설위원/소설가)

 상현 씨가 아버지로부터 기름소를 팔아야겠다는 연락을 받은 것이 어제 저녁이다. 그래서 부랴부랴 아침에 시골집으로 내려 왔다. “저렇게 추레하게 있는 것두 보기싫구….” “또요?” “또 마침 사겠다는 사람이 있어. 육십만 원 주겠댜. 저거 벌써 안 쓴지가 오년두 넘었잖냐.몸체두 자꾸 녹쓸구 기름받이두 누가 떼갔는지 없어.

 아버진 경운기를 동네서 제일 나중에 샀다. 소만 고집했다. “저 소가 어떤 손데, 저 소 아녔으면 우리는 물론이구 동네 집집이 농사 못 졌지. 그뿐이냐 네 할아버지께서 나, 작은아버지, 세 고모들 모두 송아지 나면  팔구 팔구 해서 학교 보내구 장가 시집보냈다. 그런 소야.” 그래서 상현이 고등학교 때 아버지께 졸랐다. “아버지, 지금 동네에 웬만한 집은 경운기 다 있어요. 소로 농사짓는 집은 우리 집밖에 없어요. 소가 하는 일 경운기가 다 해요.  논밭 갈지요, 논 썰지요, 논밭 둑 짓지요, 흙 부수고 고르지요, 밭이랑 짓지요, 거름 비료 나르지요, 농작물 실어 운반할 수 있지요. 그 뿐이 아녜요. 소가 못하는 일까지 할 수 있어요. 가물 땐 경운기 모터에다 양수기 연결해서 물 퍼 올릴 수 있구요, 애들 학교 갈 때 태우고 갈 수 있구요, 장에 갈 때 식구들 동네사람들 태우고 가기도 하구요. 이렇게 논밭 일을 쉽고 빠르고 많이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수확량도 훨씬 증가돼서 농가소득에 많이 도움이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버지, 우리도 경운기 사셔요. 예?” 그런데도 아버진 쓴웃음만 지으며 쩝쩝 빈 입맛만 다셨다. 상현인 다시 졸랐다. “소 먹이 이거 보통 일이 아녜요. 날마다 쇠꼴 베는 일, 아침저녁으루 쇠죽 쑤는 일, 농한기 때 풀 찾아 산 아래나 논둑밭둑 골라 소 뜯기는 일, 여물(볏단) 작두로 써는 일, 콩깍지며 여물 저장하는 일 이런 것 이것 다 누가 할 꺼야요, 아버지가 하실 거예요, 우리 형제두 인제 못해요. 남들은 경운기에 기름만 넣으면 이런 일 다 해결하구 있는데 맥 빠지게 그런 일 하구 있어요?” “소는 여태까지 잘 부려 왔지만 경운기는 생잽이루 운전 배워야지 기름값은  안 드냐?” “아버지, 운전요 그건 염려 마셔요 누구든지 하루면 다 배워요 소 부리는 것보다 더 쉬워요 보셔요, 소는 논밭을 갈 때 뒤에서 쟁기하구 소고삐를 붙잡구 어뎌뎌뎌 하면서 소를 조종하며 따라가지요, 하지만 경운기는 통통통통하며 제가 소리를 내면 뒤에서 손잡이만 붙잡구 조종하면서 따라가기만 하면 돼요. 그리구 기름값요? 경운기만 있으면 나라에서 면세유도 여섯 드럼인가를  공급해 준대요. 살 때도 나라에서 얼마를 보조해 주구요. 그러니까 한 대 사셔요 예?” “글쎄….” 이 틈을 타 상현은 회심의 카드를 내밀었다. “아버지가 아직도 소에 미련을 못 버리시는가본대요 이렇게 해요 그럼.” “어떻게?” “여물 대신 ‘기름 먹는 소’ 라구 해서 경운기를 ‘기름소’라구 하면 어때요?” 이에 아버지 얼굴에 금세 화색이 돌더니 선뜻 수락했던 것이다. 

 


 아버진 농사일을 마치면 기름소를 닦고 조이고 기름칠을 열심히 했다. 상현이 형제도 학교 갔다 오면 기름소를 몰며 아버지 농사일을 수시로 도왔다. 이렇게 해서 아버진 두 아들형제 대학까지 보냈다. 상현이 군대 갔다 오니 기름소가 바뀌어 있었다. 나라의 반값정책이 있어 헌 것이 된 먼저 것을 없애고 새로 샀다는 것이다. 그걸 운전하며 이태동안 아버질 도와 농사를 지었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직장 찾아 수원으로 올라갔다. 이때부터 아버진 기름소로 농사지은 것이라며 양식과 부식을 수시로 보냈다. 그렇게 한 25년이 흘렀을 때다. “나나 네 어머니나 이제 농사일 손 뗄란다. 이제 힘에 부쳐. 농지 다 남 줬어. 그 도지 받으믄 우리 두 내우 충분하니 걱정은 말아라. 그래서 저 기름소는….” 여기서 상현 씬 얼른 끼어들었다. “아버지, 저 기름소는 팔지 말아요. 저게 어떤 기름손데 없애요.” 그 옛날 ‘저게 어떤 손데 없애!’ 하던 아버지 말씀을 고대로 했다. 정말 그랬다. 아버지와 상현 씨에겐 여느 경운기가 아닌 것이다. “그래 알았다. 네 말대로 하마.” 이후 상현 씬 생활비랄까 용돈이랄까 를 더 올려 보내드렸다. 아버지와 상현 씬 그 후 5년 동안 마당 한 쪽에 서 있는 기름소를  들고나며 보아오는 터이다.

 그런데 그 기름소를 팔아야겠다는 것이다. 그 옛날 경운기를 사자고 아버지께 조르던 것과는 반대로 이번엔 아들에게 팔아야겠다고 조르는 형국이다. 상현 씬 그러는 아버지가 측은해 보였다.  여기서 더 이상 아버지를 초라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요 아버지, 아버지 생각대루 하셔요. 저두 찬성이에요.” 그리곤 마당의 기름소를 한참 쳐다보곤 수원 집으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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