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기황 (시인)

▲ 나기황 (시인)

지난 13일 북한당국(김정은)에 의해 저질러진 ‘김정남 독극물 피살’사건이 톱뉴스로 보도됐다. 뉴스를 전해 듣는 것만으로도 존속살해까지 서슴지 않는 공포통치의 광기(狂氣)가 무섭다. 특히 이번 사건은 2012년부터 내려진 소위 ‘스탠딩 오더(standing order)’에 의한 것이라 하니 김정남이 스스로 죽지 않는 한, 아니 죽일 때까지 계속하라는 ‘암살명령’이란 점에서 섬뜩하다.
북한정권(김정은)은 이미 괴물이 됐고 악마가 된지 오래다.
“목숨만 살려 달라”는 이복형의 간절한 청을 들어주기보다는 천륜을 저버리는 쪽을 택했다. 집권 후 김정은은 ‘견장정치(肩章政治)’로 군부를 장악했다. 하루아침에 어깨의 별이 떨어져 나가고 살육(slaughter)의 잔치에 초대되는 공포를 겪지 않으려면 김정은의 품을 떠나서는 안 된다. 깜박 조는 것만으로도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세상이 34세 김정은이 통치하는 세상이다. 집권 3년 만에 고모부 장성택을 비롯한 70여 명의 60, 70대 원로간부들을 숙청하고, 지금까지 340여명의 불안요소들을 제거하는 패악(悖惡)을 저질러왔다. 

프로이드에 의하면 인간의 행동은 불합리한 본능적 충동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한다.
인간들 사이에 존재하는 공격성이 경제적 이유나 어떤 불평등에서 오는 불만에서가 아니고, 죽음에 대한 인간의 본능, 즉 외부로 향하는 ‘타나토스’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인간관계 안에서 또 다른 공포는 ‘단절’이다. 인간의 존엄을 인정받고 ‘연결’되기 위한 노력이 외려 ‘죽음과 공포’를 불러오는 ‘단절’의 결과로 나타난다면 한참 어긋난 판단이다.
자신의 권력욕과 체제유지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 해도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행위를 정당하다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스탠딩 오더(Standing Order)’가 가지고 있는 종결(Terminate)의 의미를 발전적 개념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바람직한 공동체적 이슈를 ‘취소하기 전까지 반드시 지켜야 하는 사회규범’으로 삼으면 어떨까 싶은 것이다.
종교적인 부분을 빼내면 오랜 세월 인류역사와 궤를 같이 해 온 십계명이 일례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십계명은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으로부터 받았다는 계율이다.
전승과정에서 교파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대개는 열 가지 계명으로 묶여진다.
가톨릭계 십계명(十誡命)중 위로부터 세 가지 계명은 하느님(신)께 흠숭(欽崇)을 드리는 내용이고 나머지 일곱 가지는 사람들 관계 안에서 지켜야 하는 규범으로 볼 수 있다.
-부모를 공경하고, 살인도, 간음도, 도둑질도 하지 말고, 이웃에게 불리한 증언도, 이웃의 아내나 재물을 탐하는 어떤 행위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계명의 요지다.
수천 년 인간의 삶을 지탱해 온 최소한의 골격이며 어느 것도 빼어버리거나 취소할 수 없는 삶의 준거가 되는 것들이다.
불교에도 평신도들이 마땅히 지켜야 할 다섯 가지 계율(五戒)이 있는데 그 첫째가 ‘불살생(不殺生)’이다. 무릇 중생의 생명을 귀히 여기고 살생을 금하라는 생명존엄의 계율이다.
생명을 빼앗는 행위로 인해 자비심의 종자가 끊어지고 본인도 단명하게 된다는 가르침이다.

스탠딩오더로서 ‘5계명-살인하지 마라’를 확대해석 한다면 5계명의 범주는 생각보다 넓다.
-국민을 절망에 이르게 하는 정치권의 혼탁 상, 거짓 증언으로 얼룩진 특검상황, 연일 격해지고 있는 촛불과 태극기 집회, 도무지 나아지지 않는 사회의 부패상 등 모두 5계명의 범주에 들어간다. 희망과 신뢰는 목숨만큼이나 중요한 삶의 가치이며 그것을 앗아가는 행위는 제5계명에 저촉되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이 증폭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스탠딩오더’로서 영원히 취소될 수 없는 사회적 가치는 무엇인가 생각해 보고 싶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