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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에세이- ‘충북 이종찬’ 합창의 감동
동양에세이- ‘충북 이종찬’ 합창의 감동
  • 이종찬
  • 승인 2017.02.23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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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찬 <충북도체육회 상임부회장>
충북체육회 상임부회장

초등학교를 마친 후부터 부모형제와 떨어져 살기 시작한 필자는 지금까지 혼자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당시 아버지는 음성 금왕읍 쌍봉초에서 근무하셨기 때문에 하당의 큰댁에서 누님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중학교를 다녔다. 어느 토요일 오후 소여리를 지나 전승비, 사정리, 무극을 거쳐 강거리(쌍봉초)로 가는 길을 달리고 있었다. 어머니와 동생들이 보고 싶으면 습관처럼 달렸다. 가로수, 많은 수목들, 처음 보는 산길, 동네를 스치고 지나다보면 온몸이 땀에 젖어 힘에 겨웠지만 그때만큼은 부모님, 동생들을 잊을 수 있었다. 그렇게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필자는 장거리선수로의 기반을 자연스럽게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청주고 2학년 가을 부산-서울 간 시도대항역전경주대회 도 대표로 출전했다. 고된 훈련과 수차례 선발기록대회에서 살아남아야 했고, 조치원역 부산행 열차에 탑승해야만 도 대표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경쟁에서 이겨야 했다. 철쭉꽃 색깔의 트레이닝 단복이 그렇게도 소중했고 자랑스러웠다.

대회3일째가 되어 처음 뛰게 되었다. 2년 전 45회 인천전국체전 마라톤우승자인 채갑진선배를 맞아 싸워야했는데, 그야말로 내 첫무대는 엄청난 모험이었다.

그날경기의 마지막 소구간인 월곡~김천역 구간에 배치되었다. 필자는 바통을 이어받자마자 30여m 앞서가던 채선배를 바짝 따라붙었다.

“야! 종찬아, 잘한다. 그렇게만 가면 네가 이긴다.”

우리선수단의 감독차에서 나오는 응원소리에 갑자기 힘이 솟으면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골인지점을 1km정도 앞두고 마지막 고개에서 한 발짝 앞서가던 채 선배의 머리가 뒤로 젖혀지면서 지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고갯길 정상에서 승부를 걸자는 생각에 전 속력으로 질주했다. 어떻게 달렸는지 지금도 아무 기억이 없다. 결국 필자가 7초를 이겼다.

이기기 위해 얼마나 이를 앙다물었는지 어금니가 뻐근함을 느낀 것은 그날 밤 숙소에서였다. 감독선생님께서 우승격려금 2000원을 주셨다. 당시 통닭 한 마리 값이 250원이었으니 큰돈이었다.

대회5일째 대전~천안구간에도 주자로 배치되었다. 필자가 달리는 모습을 보고 서울번호판을 부착한 지프차에서 한 노인이 큰 소리를 지르면서 응원해 주셨는데, 그 분이 베를린올림픽 영웅 손기정 선생이라는 것을 나중에야 듣게 되었다.

그후 필자는 멕시코올림픽(1968년)에 대비한 국가대표선수단에 선발되어 꿈만 같았던 태릉선수촌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민관식 대한체육회장님과 손기정 선생은 선수단과 숙식을 함께하면서 지도와 격려를 해주셨다. 시골뜨기인 필자에게도 늘 해주시던 용기와 격려의 말씀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야, 청주고보!” 내 이름은 그분들께는 항상 청주고보로 통했다.

이후 대학을 마치고 교직을 선택한 필자가 40여년의 교직생활 중 충북대표선수를 지도하면서 목포-서울간 학생역전경주대회 2연패, 경부역전마라톤대회 7연패와 10연패, 코오롱전국학생구간경주대회 남녀공동우승 등 굵직한 대회를 우승으로 이끌 수 있었던 것도 지금 생각하면 태릉선수촌 3년여의 훈련과정에서 얻은 훈련방법, 기술처방, 노력하는 자세와 인내력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2004년 열린 50회 경부역전경주대회에서 우리는 초반 서울팀에 6분40초 차이로 뒤지는 바람에 패색이 짙었지만, 우리지도자들의 특단의 리더십으로 마지막날 서울-임진각 구간에서 역전에 성공하며 7연패를 이뤄낸바 있다.

당시 서울에 도착해 쌓인 피로 탓에 독립문근처 여관방에서 오랜만에 낮잠에 빠졌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지사님 비서실장입니다. 여기 싱가포르입니다. 전화를 바꿔드리겠습니다”라고 한다.

이원종 당시 지사님께서 경제사절단을 이끌고 해외출장 중 소식을 듣고 전화를 주신 것이었다. “나 이원종지사입니다. 잠깐만 들어보세요.” 하더니 “이종찬, 이종찬, 충북 이종찬”을 외치는 전화기속 함성이 내 귀를 때렸다. 경제사절단 모두가 한 자리에 모여 7연패를 염원해주시던 그 함성이 지금도 생생하게 들린다. 모두 모두 고마운 분들이다.

1999년 11월 2연패 당시 도내 한 방송사와의 임진각 인터뷰에서 “20연패의 희망과 가능성을 향해 노력하겠다”는 약속이 현실이 되었다.

내가 평소 이루고자 했던 그 많은 희망들 중에서 가장 순수한 희망을 이루었으니 경기장을 떠나면서 제자, 후배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지금 당신의 마음을 채우고 있는 꿈은 무엇인가.

그 꿈을 이룬 후에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꿈이 있으면 행복해지고, 꿈 너머 또 꿈이 있으면 위대해 진다는데 꿈 너머 꿈으로 가는 순수한 길을 당신은 찾아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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