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원(충북학연구소장)

▲ 김규원(충북학연구소장)

최순실, 문화융성, 블랙리스트라고 적으면 무슨 일인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는 융성해야하고 문화적 삶은 보장되어야 하며 아울러 문화적 다양성 즉 소수성을 근거로 한 문화민주주의는 확장되어야만 한다. 저 멀리 백범일지까지 안가더라도 문화가 우리네 삶의 원천이며 아울러 나아가야할 지향점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논리는 허점이 있을 수도 있고 다른 견해가 있을 수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이 또한 문화의 한 단면이라는 것이다. 작년 말,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지정된 미국의 가수 밥 딜런은 선약이 있어 시상식에 불참하겠다고 했다. 선약이라니...점심, 저녁 모임약속야 미루면 되는데 하면서 일의 중요성이나 앞뒤를 못 가리는 철없는 혹은 생각 없는 연예인이라 서 그런가 하고 웃긴다라는 말을 할 수는 있을 것이고 아울러 노벨상의 의미와 고귀함, 희소성을 부각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다른 측면으로 본다면 이 또한 밥 딜런이 자신의 노래를 통해서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와 같은 맥락이 아닌가싶다. 즉 문화란, 혹은 문화가 현실의 권력, 그것이 문화적인 영향력 혹은 정치적인 권력이든 간에 지나치거나 심하게 그리고 자주 밀접, 밀착, 접근하는 것을 우려하는, 조심하라는 메시지가 아닐까. 이런 점에서 우리는 문화의 정의와 의미는 물론 역할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고 생각을 점검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긴 논의 짧게 한다면 문화는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니고 모든 사람의 것이며 물 흐르듯이 흘러가는 것이라는 점이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논의가 지역에서 문화인, 문화 활동, 문화적 삶을 위해 노력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안하다기 보다는 그것이 문화이기에 그렇다는, 아울러 그렇기 때문에 삶은 계속된다는 식의 이야기를 중국 역사상 가장 문화가 융성했던 당나라 때 이야기와 등치하고 싶다.

문화민주주의적 측면에서 또 다른 문제는 도덕적 불감증이다. 나의 상업적 이익 등등을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 지역의 가치나 존엄성은 무시되어도 된다는 식의 발상이 문제인 것이다. 요즘은 조금 시들해졌지만 이른바 한류 혹은 K-컬쳐라는 것은 7,80년까지 한국사회를 획일화, 단순화, 저급화 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 미국의 대중문화와 이른바 일본의 왜색문화의 또 다른 버전이 아니라고 누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동남아시아의 많은 청소년들을 우리 가수들의 시장으로 인식해서 낯 뜨거운 행위를 콘서트 장에서 버젓이 벌려 현지인들의 정체성과 존엄성을 무시함은 물론 우리 드라마에서 전개되는 남존여비와 같은 계급적 질서들, 엄숙함은 물론 미와 학력 등의 서열화 같이 허위의식을 전파하는 것이 진정 홍익인간의 정신에 부합하는 것인가. 불과 얼마 전까지는 이른바 토건국가로 희화화된 적이 있었는데 그 덕에 얼마나 많은 우리의 땅과 강이 훼손되어서 수많은 생명체들의 터전이 무덤으로 변해 버리지 않았던가. 

따라서 문화민주주의란 결국 소수의 가치, 아주 작은 생명체조차도 존중하며 이들과의 공존을 통해서 다양성을 보장함은 물론 이러한 생명체들 하나하나가 문화 활동의, 문화 창조의 주체이며 원동력이며 동시에 문화융성의 향유자라는 점에서 우리가 지향해나가야 할 가치와 덕목임은 분명하다. 이른바 문화를 경제에 등치시켜서 문화산업을 산업 혹은 상업적 측면에서 활용하겠다는 것은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지만 온 나라가 한류라는 광풍에 휩싸여 애매하고도 막연한 자긍심을 갖다가 최순실류의 인간들에게 뒤통수를 강하게 맞은 지금, 이제 다시 시작이다. 지역 문화민주주의여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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