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동 <시인·전 충북고 교장>

‘임명장 교감 김효동 중학교 교장에 임함 연풍중학교 근무를 명함 1982년 3월 1일 대통령 전두환’

평교사면 어떻고 교감·교장이면 어떠랴마는 막상 발령 통지를 받고 보니 희비쌍곡선이 급습해 왔다.

그렇게도 기다리고 갈망했던 학교장이 되어 초임지에 부임하는 날 뜬눈으로 지난 밤을 지새우고 조그만 이불 보따리와 간단한 일용품을 챙겨 버스에 몸을 실었다.

정든 가족과의 이별의 아쉬움과 고독한 여운, 그러면서 새로운 희망과 포부를 간직한 채 눈을 지그시 감고 도착지에 오는 동안 무언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언제나 햇빛 없는 그늘에서 묵묵히 어린 학생의 존귀한 영(靈)을 기르는 일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데 대하여 감사를 드리면서 학교장으로서의 사명감을 신명같이 여기리라, 그리고 언제나 학생과 교직원을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늘 염두에 두고 실천에 옮기는 자세를 가지리라 다짐했다.

소리 없는 교정엔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 곳은 허전하고 고독했다. 그리고 쓸쓸하고 조용했다. 도대체 우리가 바라는 교정의 가치와 의미는 무엇인지 의구심은 꼬리를 물었다.

부임하자마자 각 학년의 1반은 남학생으로 2반은 여학생으로 3반은 남녀 혼성반으로 편성된 것을 혁신적으로 개편했다.

산업화 도시화 개방화 자율화 추세를 보이고 있는 시점에서 1학년부터 3학년까지 9개반을 모두 남녀 혼성반으로 개편했더니 상당한 교육적 효과를 높여 교육계의 화제가 되었다.

진지한 수업분위기 조성과 교과 성적의 향상은 물론 이성(異性)에 대한 호기심이 자연스레 해소되고 고교 진학률도 급신장 되었으며 교칙위반 사례도 감소되어 생활지도면에서도 큰 호응을 얻었다.

좌석 배치방법도 종렬형, 횡렬형, 혼석형, 구분형 등을 학년에 따라 적용시켰으며 문제점인 여학생의 탈의실 미확보, 이성 접촉으로 인한 잡다한 사고 등은 교사들의 노력에 의해 해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직도 유교적 전통 관념이 강하게 잔재된 농촌 학부모들의 부정적인 의식을 해소시키는데도 상당한 노력이 뒤따랐으나 1년간의 실험적 교육 효과가 긍정적으로 나타나자 거부반응은 자동 해소되었다. 지역사회와 학부모의 전적인 참여로 크게 교육적 성과를 얻어낸 사례는 여태껏 잊지 못할 추억으로 기억 되고 있다

소문난 잔치로 여겨진 조령제(鳥嶺祭)는 평소 아이들이 익힌 학예발표 체육대회 작품 전시등 전인교육의 학습발표회로서 지역주민 학부모 동문들이 적극 참여하는 면내 최대 축제로 면민화합과 총화체제가 조성되었다.

문경새재 고개 너머에 고적대 팡파르가 울려 퍼졌고, 가마솥 걸어 놓고 끓이는 국밥 냄새는 단풍으로 붉게 물든 조령산 줄기로 에워싼 연풍면 일대를 술렁이게 했다.

훈훈한 산골 인심을 보기 드문 흐뭇함으로 참여한 모든 이들의 가슴마다 심어주었다. 조령제를 최대의 축제로 올려놓은 것은 지금도 자랑스럽고 잊지 못 할 기억이다.

지금 우리는 교육부를 없애느니 교육을 개편해야 한다는 등 어수선한 현실에서 헤매고 있다.

속절없이 내리는 비는 여전히 교정을 적시고 있다. 소리 없이 내리는 비와 더불어 소리 없는 교정을 다정스레 걷고 싶은 밤이다.

김효동 <시인·전 충북고 교장>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