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영섭(인성교육 칼럼니스트)

▲ 반영섭(인성교육 칼럼니스트)

지난 달 박근혜대통령을 풍자한 그림 '더러운 잠'을 놓고 나라가 떠들썩 했었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 주최로 열린 시국비판풍자 전시회 '곧, 바이!(soon bye)'전에 참여한 이구영작가가 내놓은 작품이다. 19세기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 16세기 이탈리아 화가 조르조네의 '잠자는 비너스' 등의 누드화에 박근혜 대통령의 얼굴을 합성한 것이다. 이 그림은 이날 오후 보수성향 지지자들에 의해 산산조각이 났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표현의 자유를 외치며 항변했지만, 새누리당과 국민의당, 바른정당 소속 여성 의원들은 작품 전시 철회와 사과를 요구했고, 이에 더불어민주당은 반(反)여성적인 측면이 있다며 표의원을 당 윤리심판원에 회부하여 당원정지 6개월이라는 솜방망이 처분을 내렸다. 그럼에도 논란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정치권 내 소동과는 별개로 국내 미술가들 사이에서도 이 그림을 두고 SNS 상에서 논쟁이 일었다. 대체로 표현의 자유를 지지하는 의견이 많지만, 그 안에서도 미학적, 예술적으로는 수준 이하라는 지적도 있다. 서양화가인 필자의 의견은 우선 표현의 자유나 작품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국회에서 이러한 작품이 전시됐다는 게 문제라고 본다. 물론 대한민국 헌법 제22조 ①항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 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를 표현의 자유로 인정해야 할지는 그 사회의 규범과 통념에 따르는 것이 보편적 정서이다. 이 그림이 특히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은 그 대상이 국가의 최고 권력자라는 것. 그리고 여성이기 때문일 것이다. 예술과 외설의 경계는 참으로 모호하기 그지 없다. 예술이 이룩해야 할 것은 현재 사회의 최고 계급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습관적인 감정과는 달리 모든 인간의 본능에 의하여 보존되는 동포관념, 이웃에 대한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현대에 있어서 예술의 사명은 인간적 행복을 하나로 결합시키는 데 있다. 예술은 육체적이 아닌 정신적인 평화와 행복 그리고 안식을 제공하는 수단으로 존재하여야 하는 것이다. 단순히 예술이 상행위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또 다른 정치행위의 대상이 된다면 우리의 행복한 삶은 요원 할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예술을 통한 풍자와 해학은 늘 존재해 왔다. 풍자는 남의 결점을 빗대어 공격하는 것을 말한다. 풍자와 해학은 차이가 있다. 풍자는 찌를 자(刺)를 쓴다. 상대와 대립각을 세우며 비판적으로 비꼰다. 반면에 해학(諧謔)은 대상을 한층 넓고 깊게 통찰하면서 동정적으로 감싸준다. 풍자와 해학은 공통점과 차이점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풍자와 해학은 웃음을 동반하는 현실 드러내기라는 점에서는 공통적이지만 대상에 대한 어조와 태도는 다르다. 풍자는 인간 생활 특히 동시대의 사회적 결함, 악덕 등을 비꼬는 공격적인 데 반해 해학은 대상에 대해 동정과 연민을 느끼게 하는 웃음과 익살이 묻어나는 것이다. 해학은 인생을 낙관적으로 생각한다는 점에서 냉소적이라기보다는 관조적이지만, 풍자는 현실의 문제점을 드러내어 비판하고 그것을 개혁하고자 하는 의지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풍자와 해학은 개념적으로는 어느 것이 풍자이고, 해학인지를 구분할 수는 있지만 그 둘을 완전히 다른 개념으로 인식 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풍자와 해학의 대상에 대한 애정도가 구분 짓는 결정적인 차이는 아닐까. 해학은 적어도 최소한의 애정을 가진 비판이고 풍자는 애정조차 없는 비판이라는 것이다. 그리나 아무리 표현의 자유가 헌법에 보장되어 있더라도 표현의 제한은, 최대한 자유를 지키는 쪽으로 신중을 기하고, 해당 표현이 가까운 미래에 어떠한 실질적 해악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면 자중해야 한다. 그 불러올 해악이 일부 몰지각한 예술가들의 오판으로 자기불만 표출과 정치의 하수인이나, 권력을 가진 자의 뇌물이나, 금권자의 부의 부정축재의 수단으로 전락하게 된다면 심각한 일이 아인가. 예술은 인간들과의 소통과 교감의 도구이고, 예술은 정신적 풍요의 산물이자, 대리물로서 인정받아야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물질적 욕구충족과 정치와 권력의 수단으로 추락한다면 과연 참된 예술행위가 일어나고 있지 않는 가 반문하며 예술가들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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