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문석
나도 알고는 있다 우리가 가는 이 길이
끝내 성지(聖地)에 도달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히말라야의 짧았던 여름
네가 발굽 경전 두드리며 초원을 질주하면
나는 흉내 서두르다 무릎 흉터 일쑤였고
내가 황모필 가지런히 합장을 하면
너는 늘 먼산바라기였다
너와 나, 서로의 고삐를 놓고
그리하여 이 산천의 허허로운 바람이 되어
네가 설산을 넘어 마을에 들면
나는 거기서 한 폭의 룽다로 휘날리고
내가 꽃 속에, 구름 속에 들면
네가 거기서 한 폭의 룽다로 휘날리는
그런 꿈으로 순례의 길을 떠났건만
지금, 여름보다 짧은 가을이
위태롭게 길을 떠메고 있다
묻지 말자 애당초
누가 먼저 이 길을 떠나자고 했는지
길은 여전히 설산으로 향해 고개를 들고 있고
우리의 등짐엔 아직 편자 몇 족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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