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삼

길을 낸다, 낚싯대가

낚싯대 위를 곡예하듯 걸어가 물속에 든다

하나가 된다

나와 물, 물과 산, 산과 마을, 마을과 노인,

노인과 아이, 아이와 우주

내가 나를 나무가 나무를 구름이 구름을 잡지 못할 때

물밑에 갇혀, 물위에 떠올라 풍경을 만든다

풍경 속에 든다

빛은 제 몸 사이사이에 어둠을 키우고

어둠은 번뇌의 칼끝에서 회쳐 진다

그 사이 물고기는 물을 낳고

물은 물고기 등이 되고

비늘은 태양을 향해 활시위를 당긴다

팽팽한 빛, 빛이 굴절된다

그 빛에 실명한 내 눈과 물고기의 눈과 물의 눈이

낚싯줄에 있다

 

물속 어둠만큼의 딱딱한 질량으로

물 밖 밝음만큼의 팽팽한 부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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