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기 영 논설위원 / 유원대 교수

(동양일보)제2차 세계대전 이후 만들어진 상당수의 도시는 종종 동시대인으로부터 거의 무시되고 대개 거부되었던 몇몇 공상가들의 사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공상가들, 그들의 비전, 그리고 도시건설의 일상적인 과정에 미친 이들이 도시계획을 태동시킨다. 초기 계획운동의 비전은 1890년대와 20세기초 무정부주의 운동으로부터 유래되었다.

무정부주의 개척자들의 비전은 단지 대안적 건조물 뿐만 아니라 소규모 자치사회에서 노동하고 생활하는 사람들 사이의 자발적 협동에 기반한 사회이다. 물리적 형태 뿐만 아니라 시대정신에 있어서 그들의 대안은 작은 도시였다. 그러나 그들의 이상이 실현될 때 거대 국가관료기관을 통해 이루어진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실제로 도시계획은 거의 인식하기 어려울 정도로 여러 도시문제들과 결합되고 그 문제들은 경제, 사회, 정치적으로 융합된다. 이 상호관계는 끝도 경계도 없지만 임의적으로라도 경계를 설정해야 한다. 계획이라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만큼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매우 탄력적 용어인 도시계획의 공간적 의미와 관련된다. 거의 모든 사람은 도시계획이 도시를 둘러싼 지역의 계획을 포함해야 하는데 동의한다. 도시계획의 개념을 하천유역, 독특한 지역문화를 갖는 단위 등 자연적인 지역을 포함하는 데까지 확장한다. 확장하는 거대도시와 인구감소를 겪는 농촌사이의 관계는 도시계획에서 중심적이며 중요한 주제이다. 그것은 도시와 지역정책과 관련된 국가와 지역의 경제계획을 포함한다.

경계의 다른 문제는 언제 시작되었는가 하는 시간적 문제이다. 이는 20세기 도시계획 사이의 시기이다. 명백하게 1880년대 영국에서 태동된 도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세기 서구 도시계획의 핵심사상이 두드러지게 런던과 뉴욕을 기반을 두고 전개되어 왔다.

20세기 도시계획은 지적 전문적 운동으로서 본질적으로 19세기 도시의 해악에 대한 대응으로 나타난다. 영국의 산업시대 초기 슬럼가에 기거할 수 밖에 없었던 수백만의 빈곤층의 곤경에서 비롯되었음을 보여준다.

거대한 사회적 긴장과 정치적 소요로 고통받던 도시사회였던 1880년대 중반의 런던에서 가장 깊이 인식되었다. 계획된, 새로운 사회질서를 형성하기 위해 최초의 임시적인 실험이 이루어지자, 시장도 대대적인 교외화의 과정을 통해 슬럼도시의 최대의 해악을 해결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 도시에 대한 최초의 그리고 가장 중요한 대응은 하워드의 전원도시 개념이다. 거대도시의 슬럼과 스모그, 그리고 과도하게 높은 지가로부터 멀리 떨어진 개방된 시골에 건설된 새로운 자족적 신도시에서 인구와 고용, 여러 도시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그후 이 전원도시의 개념은 단순 침상교외로부터 거대도시의 인구분산책으로 변형되어 전개되었다.

이러한 하워드의 사상은 지역도시로 확대되기도 했다. 중심도시의 혼잡에 대한 해답이 광대한 지역계획으로 보고, 지역간 생태학적 균형과 자원재활용이라는 원칙에 근거해 조화롭게 개발하자는 움직임이다.

반면 이러한 조류와 대조되는 사상적 전통도 있었다. 그것은 도시계획의 기념비적 건설에 관련된 전통이다. 상업주의와 연계된 시민긍지의 보조물로, 왕실의 위엄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전체주의 과대망상증의 대리자로 등장하기도 했다. 그것은 허세, 권력, 권위의 상징으로서 진정한 사회적 목표와는 무관하게 진행되었다.

전원도시와 기념비적 도시의 혈통과 동시에 연관된 또 다른 전통은 꼬르뷔제의 비전이다. 현대도시의 죄악은 개발밀도이며 그 해결책은 역설적으로 밀도를 증가시키는 것이라 주장한다. 강력한 종합계획가가 현존 도시를 파괴하고 공원에 건설되는 고층건물군의 도시로 대체하고자 했다.

어떻게 도시를 계획할 것인가에 대한 지난 백년의 논쟁 끝에, 그리고 이상을 현실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반복된 시도 끝에 우리는 우리가 출발했던 곳으로 되돌아 왔음을 발견한다. 이론가들은 계획의 무정부주의적 기원으로 회귀했으며, 도시 자체는 다시 쇠퇴, 빈곤, 사회악, 시민의 동요의 장소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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