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2017년 3월10일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에 새 장을 여는 날이었다. 헌법재판소는 이날 재판관 8명 전원 일치로 박근혜 대통령의 파면을 선고했다.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로 대통령이 파면돼 나라와 국민들에게 불행한 날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이를 기화로 새로운 나라를 향해 갈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박 전 대통령 탄핵의 가장 큰 배경은 ‘은폐와 훼손’이다. 헌재는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실을 철저히 은폐했고 국민에게 약속한 검찰과 특별검사 수사를 회피하고 청와대 압수수색을 거부하는 등 대의민주제 원리와 법치주의 정신을 훼손했다고 판시했다.

헌재는 “피청구인(대통령)의 위헌·위법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 수호관점에서 용납할 수 없는 중대한 행위”라며 “파면으로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면서 재판관 8명 전원이 파면에 동의했다.

탄핵은 박 전 대통령이 자초한 일이다. 지난 4개월동안 거짓말을 밥 먹듯하고 궁지를 빠져나가기 위해 급급해 하는 모습이나, 변명과 꼼수로 시민과 맞서 싸워보겠다는 오기는 대통령으로선 보여줘서 안될 모습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파면 즉시 곧바로 청와대를 떠나야 하는데도 파면 이틀이 지난 12일 오후에서야 청와대를 빠져나왔다. 서울 삼성동 사저가 거처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인데 탄핵에 전혀 대비하지 않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문제는 국민들에게 불행과 비극을 안겨준 헌정사 첫 탄핵 대통령이 됐으면 헌재 선고에 대해 승복 의사를 즉시 표명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가 침묵을 통해 추종세력에게 어떤 정치적 메시지라도 전하겠다는 의도라면 또 다시 역사 앞에 죄를 짓는 것이다. 지금 당장이라도 헌재 선고에 깨끗이 승복하고 국민에게 사죄 입장을 밝혀 국론분열을 봉합하는데 주저해선 안된다.

그런 전제하에 헌재의 최종 결정은 갈등의 끝이 돼야 한다. 박 전 대통령 탄핵은 진보의 승리도, 보수의 패배도 아니다. 비정상에 대한 정상의 승리요, 정의와 진실 앞에 굴복한 거짓과 가짜의 패배일 뿐이다.

박근혜 탄핵은 구체제 청산의 출발점이다. 모든 영역에서 적폐를 일소하고 국가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한국 보수도 무조건적인 박정희·박근혜 추종이라는 패러다임에서 탈피해 합리적인 보수로 거듭나는 계기가 돼야 한다.

탄핵 결정에 상심하고 분개하는 국민들도 있지만 이제는 누구든 대립과 갈등을 부추기는 언행을 해서는 안된다,

지금 대한민국은 조기대선을 치러야 하고 중국의 사드보복, 북한의 핵 미사일 위협,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한·일간 외교 갈등 등 나라 안팎의 상황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지경이다.

따라서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됐다고 해서 법치주의가 흔들린다거나 국론이 분열되고 혼란이 증폭될 이유가 없다.

이제는 차가운 이성을 회복하고 특권과 반칙이 없는 정의로운 사회를 이루는 데 국민들의 저력을 한데 모을 때다. 그게 시민의 명령이다. ‘이게 나라냐’라는 촛불의 울분에 ‘그래, 이것이 나라다’고 답해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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