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 사이에 너도나도 대통합을 말한다.

그렇다면 통합이란 어떤 상태이며 어떻게 하고 또 왜 해야 하는 것일까.

그런 의문은 없다.

오로지 결과에 승복하는 것이 통합이라는 듯이 말한다.

이렇게 침묵형 혹은 강요형 통합을 하면 당장은 조용할지 모르지만 또 다시 혼란이 올듯하니 별다른 감흥도 없더라도 기초부터 살펴보자.

인간이 오랫동안 이른바 문화적 삶을 가능하게 한 가장 큰 이유는 소통을 통한 협력이라고 생각된다.

포식동물은 물론 자연환경의 광포함에 대해서 적절히 적응하게 된 원동력이 바로 그러한 사고력과 소통을 통한 협력적 노력인바 위기에 직면하거나 직면할 것 같으면 우선 각자의 입장을 내려놓고 힘을 합쳐야만 지속적인 삶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옛 선인들의 교훈은 어찌 보면 莊子의 천도에 나오는 윤편의 말처럼 버려야할 찌꺼기인 듯 하다.

이 말인즉슨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일 것이고, 아무튼 아무런 의심도 생각도 없이 남의 뒤만, 남의 말만 믿고 따라 간 시간들이 지금까지라고 한다면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된 생각 좀 하면서 사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들은 이른바 인생관, 정체성, 철학, 인식, 신념, 의지, 의미 등등 여러 가지 단어로 표현되지만 결국 가치라는 한마디 말로 정리될 이러한 의미들은 어떠한 과정을 통해서, 계기를 통해서 나에게 혹은 우리에게 다가왔을까.

멋있어 보여서 일수도 있고 실질적인 경험 속에서 내재되었을 수도 있고 누군가 영향력이 있는 사람에 의해서 주입되었거나 이른바 세뇌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남의 삶, 타인의 지향점과 가치를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은 그만큼의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내가 경험한 것조차도 때로는 그러한 경험이 타인에게 間주관화할 수 있을 만큼의 의미나 가치를 갖는가에 대해서 懷疑하게 만드는데 우리는 두 개의 바위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처럼(박인환, 목마와 숙녀 중) 너무도 쉽게, 구렁이 담 넘어 가듯이 내재화하고 내 것인 양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포플리즘은 물론 여러 가지 제도에 대한 불신이 다양한 형태로 표출될 2017년의 3월 이후의 남은 나날들을 보다 의미와 재미있게 보내기 위해서는 세익스피어를 공부하는 영국의 사례를 보자.

영국의 경우 초등학생들에게 가장 쉽게 작성된 세익스피어 원작의 희곡을 학습시킨다고 한다.

그리고 이 세익스피어의 작품들은 중학생들에게는 본격적인 희곡으로 다가가는데 단순히 희곡만 읽는 방식이 아니라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교과목의 커리큘럼으로 편성이 된다고 하며 상급 학년이 되면 동일한 희곡을 연극으로 관람하게 된단다.

그리고 고등학생이 되면 반드시 다른 연출자와 배우가 출연하는 연극을 보게 하는 바 이를 통해 같은 희곡도 연출자와 배우에 따라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내재화 한다고 한다.

결국 이를 통해서 이념의 차이이든 혹은 가치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세익스피어에 대해서 얘기할 때 만큼은 서로의 공감대가 확보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학교에서 사라진 음악과 미술은 물론 흔적조차 없었던 연극들을 대체한 국영수 중심의 교과들은 결국 우리의 뒷통수를 찌르는 비수가 되어 다시 돌아오는 것은 아닐까?

문제가 더 심각해지기전에 통합을 목 놓아 외치기 전에 진정한 통합을 위해서라면 지금부터 통합 준비부터 하자고 권하고 싶다.

아니 다른 말로 공감대를 형성할 콘텐츠를 준비하라고 하고 싶다.

누군들 통합을 왜 싫어하겠는가.

문제는 통합을 할 마음의 준비도 안되어 있고 한번도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고 있는데 통합을 외치기만 하면 배달 음식처럼 누가 가져 온다는 말인가.

김규원 / 충북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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