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빨리 도는 줄은

비닐막을 만든다.

 

내가 돌리는 건 아니지만

내가 돌리지 않는 것도 아닌,

누구나 그 막을 쓰고 돌아다닌다.

 

줄의 빠르기에 따라 빛깔이 달라진다.

몸의 움직임에 따라 모양이 달라진다.

 

눕고, 앉고, 서고, 걷고, 뛰면

커졌다, 작아졌다, 찌그러졌다, 퍼졌다

한 순간도 머물지 않는 모양이 된다.

 

어쩌다 남의 막과 맞닥뜨리면

파르르 쇳소리를 낸다.

부딪힌 줄의 진동이 짧아지면서 내는 파열음.

줄이 멎으면 주검이 남는

투명한 막 속에 사람이 있다.

 

비닐을 만든 끈의 양쪽은

남과 죽음에 매여 있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