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베란다에서 화초에 물을 주다 목을 빼고 밖을 내다보니 햇살이 길게 촉수를 늘여 공원 가득 봄볕을 실어 나르고 있다. 공원 산책로를 따라 서 있는 나무들이 저마다 다양한 자태와 표정으로 서서 봄볕 세례를 받고 있다. 매운 겨울을 이겨낸 나무들이 대견스러운데 벌써 땅속에서 물을 퍼 올리기라도 하는 걸까. 가지 끝에 연둣빛이 완연하다.

진정 봄인가 싶어 겨우내 닫혀있던 베란다 문을 밀었더니 생각과는 다르게 찬바람이 와락 달려든다. 겨울 속에 봄이요, 봄 속에 겨울이다. 봄이 왔다고 하나 진정 봄은 아닌 듯싶다.

겨울은 무슨 미련이 그리 남아 봄이 오는 것에 심술을 부리며 떠나지 못하고 주춤거리는 걸까. 봄은 언제나 쉽게 오지 않았다. 꽃샘추위가 수차례 앙탈을 부린 후에야 더딘 걸음으로 어렵게 찾아온다는 것을 해마다 겪어 알면서도 그 때마다 꽃샘추위가 얄밉다.

‘꽃샘추위’ 라는 말을 지은 이는 누굴까. 참말 그 표현이 절묘한데다 곱고 예쁜 말이 운치가 있고 문학적이기까지 하다. 그 예쁜 말 때문에 그저 미워 할 수 만 없는 매력이 있는지도 모른다. 꽃이 피는 것을 시샘하기도 한다지만 잎이 피어나는 것을 시샘한다하여 “잎샘추위” 라고도 한다.

이제 정말 봄인가보다고 겨울옷을 벗고 봄옷을 차려입고 나가면 어디에 숨어 있다가 여지없이 달려드는 꽃샘바람이 품속으로 파고드는 낭패를 몇 번 격고 나야 진정한 봄이 온다.

봄이 아무리 그리워도 꽃샘추위를 몇 번이고 건너야 만날 수 있는 것이기에 봄은 더 기다려지는지도 모른다. 꽃샘추위는 오래 지속되지 않지만, 따뜻해진 날씨에 마음이 해이해졌을 때 불현듯 찾아오기 때문에 동파 피해를 입히는 경우가 많다. “꽃샘추위에 설늙은이 얼어 죽는다”, “꽃샘잎샘에 장독 깬다”는 속담이 있듯이 어느 때는 4월 초순에도, 벚꽃이 필 무렵인 중순에도 한 차례의 꽃샘추위가 몰려오기도 한다. 하지만 꽃샘추위는 조금만 더 잘 견디면 반드시 봄은 찾아올 것이라는 희망을 담은 말이기도 하다.

불현듯 매화꽃 생각이 난다. 잊고 있었던 그들의 안부가 궁금하여 공원으로 나갔다.

공원 한쪽 아파트 벽을 등지고 매화 세 그루가 해마다 봄을 제일먼저 알린다. 아니나 다를까 꽃은 어느 새 만개해 있다. 제일 동쪽 양지바른 곳에서부터 피기 시작하여 번지듯 서쪽으로 옮아가며 핀 듯 끝에 있는 나무의 꽃은 반쯤 벙글었다. 배틀한 매화 향이 연하디 연하다. 바람이 이렇게 찬데 아랑곳 하지 않고 이 셀 수도 없이 많은 꽃을 어찌 다 피웠을까. 희고 보드라운 다섯 개의 꽃잎, 가운데는 빨간 꽃받침이 비춰 보이고 소복하게 많은 수술 속에 암술 한 개가 곧추 서있다. 수술 끝에 노랗게 맺힌 꽃가루를 모으러 벌들이 어디서 이렇게 많이 왔단 말인가. 이 꽃 저 꽃을 옮겨 다니며 바쁘게 움직이는 벌들을 보니 참으로 앙증맞고 사랑스런 풍경이다. 나무는 작년보다 키가 훌쩍 커서 고개를 젖혀 보아야 나무의 끝이 올려다 보인다. 꽃샘바람에 매화 가지가 흔들리고 파란하늘은 더 없이 푸르다. 먼데 공중에서 삐릿 삐릿 종달새 소리가 환청으로 들려온다.

이튿날 아침, 밖을 내다보니 이게 웬일인가. 지붕에도, 차에도, 눈이 하얗다. 기온은 영하로 곤두박질치고 매화꽃 가지 사이에도 눈이 소복하다. 동장군이 가던 길을 되돌아온 모양이다. 그냥 물러나기 아쉬워 허세라도 부리는 걸까. 끝난 듯 끝나지 않은 꽃샘추위에 바르르 떠는 매화꽃이 안쓰럽다. 밤새 눈을 맞으며 얼마나 추워 떨었을까. 하지만 겨울 삭풍을 이겨낸 매화꽃이기에 이 추위를 무난히 건널 것이고, 햇볕은 눈을 녹이고 매화꽃을 포근히 감싸 안을 것이다. 이런 때 일수록 좌절이 아닌 희망을 선택하는 지조 있는 매화일 것이라고 믿는다. 매화나무 밑에서 추위를 견디며 소복소복 돋아났던 돌미나리도 눈 속에 입술이 파래져서 떨고 있다. 저희들끼리 몸을 기대고 의지하기에 더러 밟히고 꺾어져도 생명을 포기하지 않는 강인한 식물이니 그도 꿋꿋하게 자라날 것이라 믿는다.

우리네 살아가는 모습도 그저 평탄하지만은 않다. 어느 날 시련이 찾아와 우리 앞을 가로 막는 일이 한두 번이던가. 그런 시련을 수차례 겪으면서 우리는 성숙해지는 게 아닌가. 산다는 것은 불현듯 닥치는 꽃샘바람처럼 시련의 아픔을 견디고 다시 일어서는 것이기에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위대하고 장한 일이다.

어쩌면 꽃샘바람 덕분에 꽃은 교만하지 않고 더 실하게 피어나고, 사람 사는 일도 시련을 겪고 다시 일어선 사람만이 승리자가 된다는 것을 다시 마음에 새겨본다. 분홍치마 노랑저고리 차려입은 화사한 봄이 더욱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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