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용직

한 자리에 오래 서서

비 오는 날 돌아가려고 한다

기다리다가 남아 있는 힘을 모아서

태우는 불빛이 빗물에 부딪혀서 흔들린다

빗물은 불빛을 식히고

불빛은 빗줄기 속으로 몸을 던진다

불빛과 빗물이 섞여서 끝없이 탈 때마다

지독한 냄새가 나고 빗소리마저 격렬하게 울린다

언제까지 타려는가

돌아가는 모습이 처연하여 불빛이 어둡다

빛들이 스러지면

어둠이 빛을 싣고 와서 유리창에 바른다

아, 번득이는 몸

몸을 버리고 나온 지고지순한 사리 알갱이들

꽃잎처럼 흘러내린 자리에

실루엣처럼 다시 한 자리에 서서

비를 청하는 사람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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