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수(한국폴리텍대학 청주캠퍼스 학장)

▲ 이현수(한국폴리텍대학 청주캠퍼스 학장)

시간이 호사스러운 주말이면 끼니를 채우듯이 채 읽지도 못할 책들을 사들이는 오래된 습성이 있다. 그것도 모자라 연일 몇 개의 일간지와 주간지까지 섭렵하며 새로운 소식들에 탐닉해도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흥분은 있되 내적 성찰을 기대하기엔 뭔가 허하다. 그렇다고 신문읽기의 유용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언제나 스스로의 선택과 행동에 대한 합리적 의심의 다다름을 위해서라면 긴 호흡의 독서만큼 유효한 수단이 없다. 지식의 많음이 현명함을 의미하지 않지만 현명해지려면 지식이 많아야한다는 신념은 나이를 먹을수록 격해진다. 책 욕심에 쌓여진 종이 짐들은 나이테처럼 겹겹이 쌓여져 서재를 꼬박 채운다. 가을걷이 후 묵혀둔 배추밭처럼 지저분하다. 해묵은 책갈피의 종이 먼지는 절로 재채기를 일으키며 흐릿해진 기억을 소환한다. 그럴 때면 다시 꺼내 읽어 기억을 정렬해야 한다는 책 빚을 지며 마음 한 켠이 무거워진다. 세상의 모든 빚이 체증이듯이 책 빚도 그런 것이다. 이런 탓에 버리지도 못하고 산적해가는 책들로 인해 애시 당초 ‘미니멀 라이프’라는 대세를 지향하기엔 글렀다. 시대역행이다.

개정을 전제로 만들어진 법처럼 지금은 옳은 것이 나중에도 옳다는 보장이 없다. 지혜를 추구하는 것은 옳고 그름에 대한 집요한 일상의 질문이다. 확고한 대답을 들려주는 것이 독서뿐이라는 오래된 생각을 아직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태산처럼 쌓여져 채 읽지 못한 책 빚을 끝내 변제 못하고 언젠가 도래할 지적파산도 은근 두렵다. 그럴 때 면 자위권이 발동된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지식의 탐구가 아니라 지적 유희일 수도 있다”, “독서는 현실 판단에 이런 저런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전문성을 고양시키기엔 무리다”, “읽어야 한다는 막연한 의무감과 지적 허기에 집어든 허투루 한 독서는 시장에 널린 "상품"을 사준 것이다”. 그러나 이내 궁색해진다. 책 빚을 탕감 받으려는 불량한 자세라고 자각하기 때문이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사람에게는 생긴 대로만 살지 않고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가능성이 대부분 있다. 지구에서 자신들의 진화를 결정할 수 있는 유일한 종으로서 불완전을 받아들이는 것도 인류이다. 타인의 삶을 아프게 하지 않는다면 사실 생긴 대로 살다 가는 것도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기왕 사는 것 조금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것이 존재에 대한 도리다. 조금 더 나은 삶의 정의는 천차만별이다. 그 다양성이 각자의 방향으로 확산되고 충돌하면서 역사는 굴러간다. 허나 부딪힘의 중심에 자신들의 지혜만이 유일선이라는 진영논리가 있고 배타적 종교의 근간이 있다. 그러하기에 온전한 지적 충돌보다는 감성적 충돌이 태반이다. 적대적 악다구니로 변질되는 감성적 충돌보다 지적충돌은 보편타당성과 중재의 여지를 부여한다. 그래서 인류에게는 더 치열한 지적충돌을 이끌어낼 지혜가 필요하다. 그 지혜를 채워줄 독서는 야만의 시대에 더 절실하고 유효하다.

책읽기는 팍팍한 세상살이에서 모나고 날선 말을 둥글게 안아주는 말로 개선시킨다. 난해하지만 책 속에 내재된 수많은 말들은 은유와 환유로 갈리 운다. 시가 그렇고 산문이 그렇다. 은유는 유사성에 기초하고 환유는 인접성에 기인한다. 특히나 환유의 표현은 언어의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문체의 심미성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수많은 작가들의 노력에는 환유의 미려함이 있고 인간의 품위가 있다. 품격 없는 언어가 차고 넘치는 세상에서 직설적 표현보다 환유적 표현이 상처를 덜 주기에 책읽기는 처세에도 유익하다. 책에서 생경하게 마주하는 품사의 향기도 사람 꼴을 반듯하게 연마하는 마력이 있다. 집단이라는 추상에서 개인이라는 구체로 눈높이가 낮아진 허우룩한 세상에서 책읽기는 그래서 더더욱 관계의 미학을 안겨준다.

세상이 각박해질수록 감정을 고양시키는 글보다 무난한 태도로 납득을 구하는 글들이 좋다. 사람에 대한 알뜰한 시선의 글들이 좋다. 허나 뭐가 대수랴. 독서 편식은 부질없다. 도심 한복판에서 매일 신문과 텔레비전 뉴스를 보면서 살아가는 한, 세상에 할 말이 생긴다. 말보다 무슨 책이든 읽기를 택하고 듣기를 택한 사람들이 많아 질수 록 사회는 보드랍다. 한국 사회에서 댄 브라운이나 존 그리셤을 좋아한다고 하면 좀 없어 보인다는 세간의 평은 무시해도 괜찮다. 독서에 고상함이 가당키나 한 말인가. 호기심이든 시류이든 사둔 책을 빚지지 않고 읽어만 간다면 우리의 삶은 거푸집을 통해 단단하게 빚어진다. 책 빚은 세금처럼 파산 면책이 안 될 터이니 묵힌 책을 꺼내드는 상환의 새봄을 채비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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