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급거절·삭감 중 20.3%는 자체 자문 이유

 

(동양일보 신홍경 기자) A(33)씨는 지난해 4월 음성에서 교통사고가 나 5주간 병원신세를 졌다. 그는 척추가 21도 휘었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후 보험사에 치료비를 청구한 A씨는 ‘보험금 삭감’ 통보를 받고 황당해 했다. 보험사 자체 의료자문을 근거로 A씨의 엑스레이(X-ray) 사진을 다른 병원에 의뢰한 뒤 일부 골절각도가 잘못됐다는 이유를 들어 전체의 15%밖에 보험금을 줄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인 것이다.

A씨는 보험사와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제기했으나 ‘동시감정’ 외에 별다른 답변을 받지 못했다. 그는 “당초 진단서를 끊은 병원도 지역의 유명 종합병원인데 동시감정으로 보험사와 연관 있는 병원에서 진단을 받아야 할 필요성을 모르겠다”며 “어떻게든 보험금을 줄이려는 보험사의 행태가 괘씸하다”고 말했다.

 

A씨처럼 보험사가 자체 의료자문 등을 근거로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거나 터무니없는 비율로 보험금을 삭감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문제는 ‘예외적’으로 실시돼야 할 의료자문이 ‘통상적’, ‘관행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의료자문’은 보험사가 보험금 지급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피보험자(소비자)의 질환에 대해 전문의의 소견을 묻는 것을 말한다.

21일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지난해 1~9월 접수된 보험 관련 피해구제 신청 1018건 중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거나 적게 지급하는 피해가 60.0%(611건)로 가장 많았다. 이 가운데 124건(20.3%)은 환자 주치의가 발급한 장해진단서의 결과 대신 ‘보험사 자체 의료자문’을 근거로 지급을 거절하거나 일부만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급 거절된 보험금은 진단급여금이 40건으로 가장 많았고 장해보험금은 31건이었다.

전체 1018건 중 취하되거나 진행 중인 사건을 제외한 823건 중 보험금 지급이나 환불 등 보험사와 소비자 간 합의가 이뤄진 경우는 47.8%(393건)였다. 그러나 보험사가 자체 의료자문을 근거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한 피해구제 건의 합의율은 35%로 전체 합의율보다 낮았다.

이 같은 의료자문은 피보험자의 주치의 진단이 불분명할 경우 예외적으로 시행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 의료자문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소비자(피보험자)에게 설명하고 동의 여부를 결정해야 하지만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게 보험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과거 대기업 보험사 팀장을 지냈다는 손해사정사 B씨는 “보험사 자문의사들은 대부분 1년에 한 번씩 의사와 재계약한다”며 “당연히 재계약을 위해 보험사가 원하는 방향으로 자문내용이 나올 수밖에 없지 않냐”고 반문했다.

그는 “일반적으로 보험회사에 대해 잘 모르는 고객들은 구조상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며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제3의 분쟁조정기구가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국회입법조사처도 지난 15일 낸 ‘민간보험 장애평가 문제점과 개선방안’ 보고서에서 “공신력 있는 제3기관을 이용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며 “장해평가 다툼을 줄이기 위해 민간·공공보험의 장해평가를 모두 전담하는 별도 기관을 설립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신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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