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

아무도 들꽃들이 겨우내 비겁하였다고 말하지 않는다

나 같은 사람도 있는 힘을 다해 싸웠다

나 같은 사람도 앞장서서 싸우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를 살았다 우리들은

힘은 없지만 비겁하지 않으려 했다

아직도 크게 달라진 것 없어

마음 허전하기 이를 데 없지만

나같이 허약한 사람도 쫓기며 끌려가며

두려워하지 않고 싸웠다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위해 싸웠다고

그 생각을 하며 이 저녁 자신을 위로한다

꽃샘바람에도 순이 터 올라오는 나뭇가지가 보인다

산천에 봄소식이 오고 강물이 풀려도

내가 아직 불법이란 딱지에 묶여 있는 게 가슴 아프다

젊은날을 다 바쳐 싸우고 돌아보는 이 저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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