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년 만에 간판 내리고 쇄신안 내놓아
폐쇄적 의사결정기구 회장단회의 폐지

(동양일보 경철수 기자)전국경제인연합회가 창립 56년 만에 한국기업인연합회로 간판을 바꿔단다.

전경련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겪으며 ‘정경유착의 창구’란 오명을 쓴 전경련 간판을 내리고 기업인연합회로 바꾸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26일 밝혔다.

전경련은 지난 24일 허창수 회장이 기자회견을 열어 직접 대국민 사과를 한 뒤 전경련 혁신안을 발표했다.

허 회장은 이날 전경련 혁신위원회와 전경련 회장단 연석회의를 열고 혁신안에 대해 토론을 벌인 뒤 최종안을 확정·발표했다.

이달 초 전경련은 허 회장이 위원장을 맡고 회장단 멤버 3명과 외부인사 3명 등 총 7명으로 구성된 혁신위원회를 꾸려 혁신안 마련 작업을 해왔다.

외부 혁신위원에 고위 경제관료 출신인 윤증현 전 장관과 박재완 전 장관, 김기영 전 광운대 총장이 영입됐다.

회장단 출신의 내부 혁신위원 3인은 박영주 이건산업 회장, 김윤 삼양홀딩스 회장, 이웅열 코오롱 회장이 맡았다.

혁신안은 △정경유착 근절 △투명성 확보 △싱크탱크 기능 강화 등 3가지 원칙 아래 세부 내용이 마련됐다.

특히 혁신안에는 혁신 의지를 드러내는 상징적 조치로 전경련이란 간판을 내리는 방안 등이 담겼다. 유력한 후보론 ‘한국기업연합회’ 등이 제시됐다.

구체적인 내용으론 보수단체 어버이연합 지원 등으로 논란이 된 사회공헌 사업 예산과 관련 조직·업무를 완전히 없애고, 직원들과 조직 규모를 축소하고 연구기능을 강화하는 한편 해외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내실을 다지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정경유착을 끊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내용도 담겼다.

전경련은 이달 초 국민 의견 수렴을 위해 개설한 온라인 창구를 통해 접수된 내용도 혁신안에 반영했다.

혁신안 발표는 허 회장이 GS 회장으로 해외 출장을 갔다가 전날 귀국해 혁신안 보고를 받은 뒤 연석회의 참석 대상인 전체 회장단 멤버들의 일정을 모두 조율하는 절차를 거쳐 이날 혁신안으로 발표됐다.

전경련이 혁신안을 발표했지만 앞날은 여전히 험난하다.

정치권 등 일부에선 ‘쇄신이 아니라 해체’가 필요한 시점이란 목소리까지 나온다.

전경련은 이런 여론을 고려한 듯 이날 이름을 기입인연합회로 바꾸고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겠다고 거듭 강조하는 등 환골탈태의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사실상 조직을 해체하는 수준에서 다시 출발하지 않으면 땅에 떨어진 위상을 되살리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전경련은 이날 재벌 오너들 간의 폐쇄적인 의사결정기구로 비판받았던 ‘회장단회의’를 폐지하는 등 강도 높은 혁신안을 발표했다. 조직과 예산도 40% 이상 감축하고 정책연구기능은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으로 이관하기로 했다.

정경유착의 고리로 지적받은 사회협력회계도 완전히 폐지하기로 했다.

전경련은 유임한 허 회장과 권태신 신임 부회장 등을 중심으로 이 같은 혁신안을 강도 높게 추진할 방침이다.

아울러 회원사 추스르기에도 공을 들일 방침이다.

회비와 활동 등 모든 영역에서 기둥 노릇을 하던 4대 그룹이 빠진 이상 회원 조직 쇄신도 불가피하다.

회원사의 추가 이탈을 막고 탈퇴한 회원을 다시 영입하는 작업도 시작해야 한다.

4대 그룹은 전경련의 연간 회비 가운데 80% 가까이 부담했다. 이들의 공백이 계속되면 기존 조직과 사업을 유지하기가 사실상 어려운 형편이다.

권태신 전경련 부회장은 이날 “탈퇴한 기업들이 최대한 빨리 회원사로 들어오면 좋겠다”며 “회원사가 원하는 방향으로 전경련 조직을 바꾸고 쇄신하는 것이니만큼 탈퇴한 회원들이 다시 들어와도 좋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업인연합회가 효율적으로 기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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