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창선 (시인)

▲ 노창선(시인)

봄이 왔다. 상시로 나무시장이 열리고 장날 좌판에 나온 봄꽃들이 참으로 예쁘다. 매화가 활짝 피어나고 산수유 꽃이 노오랗게 햇살을 받고 있다. 이맘때면 봄나물도 밥상에 올라와서 입맛을 돋워 주기도 한다.
  따스한 봄날에는 장 구경 다니는 일도 재미있다. 냉이, 씀바귀, 민들레, 쑥 등등 자연밥상은 어쩌면 우리의 몸에 보다도 마음에 먼저 반응한다. 그들이 어떻게 몸에 좋은가 궁금하여 ‘네이버 선생님’한테 물어보면 금세 답을 내놓기도 한다. 도다리쑥국이라든지 소고기 애탕(艾湯)이 아니어도 맑은 된장국 만으로라도 집안에 쑥 향기가 가득해진다.
  베란다의 화분에 눈이 간다. 겨우내 생각나면 물이나 좀 주고 거의 방치해 놓았던 것들이 봄도 오기 전에 꽃을 피우고 자취 없이 떠나갔다. 분갈이도 해주어야 하고 웃자란 가지들을 잘라 주기도 해야 한다. 마당 끝에 작은 정원이나 꽃밭이 있었을 적엔 식목일에 작은 꽃나무도 심고 꽃씨를 뿌리고는 했다. 가난했지만 아름다웠던 날들을 회상해 본다. 그 시절에는 식목일이 휴일이어서 나무 심는 일이 하나의 의식처럼 생각 되었으나 이제는 딴 세상이 되었다. 도시의 삶이 아파트의 형태로 바뀌면서 나무 심을 땅도 없고 흙을 만져 볼일도 없어졌다. 각박하다.
  요즈음에는 미세먼지뿐만 아니라 봄 하늘의 또 다른 불청객인 황사가 걱정스럽다. 황사의 주발원지는 중국과 몽골의 사막지대와 황하중류의 황토지대라 한다. 작은 모래나 황토 혹은 먼지가 하늘로 떠다니다가 한반도까지 덮쳐오는 것. 아파트 숲에서 황사에 포위당하는 기분은 뭐라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불쾌하기 짝이 없다. 십여 년 전부터 국내서도 중국이나 몽골 사막에 나무심기 운동이 활발히 진행된 적이 있다. 고비사막쯤에서 열심히 나무를 심으면 황사가 좀 줄어들 것이라는 신념을 나도 믿는다. 최근에는 황사보다 미세먼지가 더 염려스럽다 한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나무와 친근한 동거를 하여왔다. 학자들은 사과나무에서 높은 곳의 열매를 따기 위해 긴 막대를 사용한 것이 인류 최초의 도구이자 기계였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나무를 사용하여 집다운 집을 지어 살면서 더욱 문명화하기도 하였다. 목조주택. 그들이 조선 소나무로 지어진 집이라면 얼마나 품위 있고 멋스러운 모습인가. 더운 여름날 대청마루에 누워서 서까래가 드러난 지붕 쪽을 올려다보는 일은 참 기분 좋은 일이었다. 서까래의 목재들이 다소 굴곡진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면 훨씬 더 자연스러운 멋을 자아내 주고는 했다. 나무로 지은 옛날 집들이 종종 그립기도 하다. 학생들의 답사를 아예 군자 한옥마을로 잡아 간 적도 있다.
  그러나 한옥체험은 여러 가지 면에서 만만치 않은 기억을 남겨 주기도 한다. 일전에는 아이들과 겨울이 채 물러가기도 전에 전라도 산 속의 한옥마을로 여행을 갔다. 한옥을 옮겨 지으면서 냉난방 시설과 욕실 화장실만을 현대식으로 개조한 형태였으나 왠지 낯설기만 하였다. 한 울타리 안에 노출콘크리트 기법으로 지어진 건축물이 있어 식당과 찻집으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오히려 친숙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한옥이라면 나무로 지은 집이라는 생각이 앞선다. 흙집보다 나무 자재의 한옥이 고급지고 수명이 길기 때문일 것이다.
  주말이면 고속도로가 몸살을 앓는다. 아파트의 도시인들은 어렵게 나무그늘로 숲속으로 몰려가고 있다. 바람에 춤추는 풀잎들, 꽃잎들, 나뭇가지들을 보면서 비로소 사람다운 숨을 내쉬고 들이 마신다. 우리는 모두 채식주의자(한강)처럼 다프네(그리스신화)처럼 변신하고 싶은 거다.
  어린 시절 마당가에 둥근 살구나무 한 그루. 봄마다 어찌나 눈부신 꽃송이들을 탐스럽게 하늘 가득 피워냈던지. 오래된 기억 속의 풍경화로 식목의 계절을 추억한다. 현대 도시의 정형화된 삶이 식목을 불허한다면 식물의 날은 어떨까. 나의 최후의 보루인 베란다에서 화분의 흙을 갈아주면서 생각해 본다. 진달래의 날, 개나리의 날, 제비꽃의 날, 산수유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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