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학 <청주대 교수>

박종학 청주대 교수

돌이켜 보면 나의 유도 인생은 늘 수행과 고난, 그리고 도전과 열정으로 가득했다.

청주시 강서면 호암리 평범한 농가마을에서 태어난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동급생 친구들보다 체력도 좋고 운동에 대한 재능도 뛰어나 체육대회가 열리면 각종 종목에 대표선수로 출전하곤 했다. 대성중 3학년 때 비로소 인생의 ‘터닝 포인트’라 할 수 있는 강형원 선생님을 만나면서 유도를 접하게 됐고 정식으로 유도를 배우기 시작했다.

늦게 시작한 탓에 다른 유도부 친구들에 비해 실력이 부족했지만 남달랐던 운동신경으로 금세 다른 친구들을 따라잡았고 청석고 3학년 때 전국 춘계 중고 유도 연맹전 단체전 우승과 함께 고등부 최우수 선수로 뽑히며 유도선수로써 주목받기 시작했다.

상무의 전신인 수경사 국군대표 유도부 소속이었던 1979년 3.1절 유도대회에서 일반부 단체전 우승과 함께 개인 최우수선수상을 동시에 수상하기도 했다. 이때부터 유도 라이트급 국가대표 선수로 발탁됐다.

그 후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9회 세계군인유도선수권 대회에서 단체전과 개인전 -71kg급에서 우승, 2관왕의 영광을 안은데 이어 그해 3.1절 기념 전국 유도대회 우승과 일반부 최우수 선수상을 수상하며 ‘박종학’이라는 이름을 국내·외에 알렸다.

1981년 9월 5일 네덜란드에서 열린 12회 세계 유도선수권대회에서 한국 유도 사상 최초로 세계 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대한민국 체육상, 대한민국 최우수 선수상, 체육훈장, 백마장, 맹호장, 자랑스러운 충북도민상을 비롯한 각종 표창장을 받았다.

이후 강형원 선생님의 제의로 지도자로서 큰 뜻을 품고 모교인 청석고와 청주대에서 선수로 활동할 당시 익혔던 경험과 기술을 바탕으로 후배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1988년 국가대표 코치로 임명되면서 1989년도 유고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김병주 선수가 금메달, 1990년 북경 아시안게임에서 김병주, 정훈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함으로써 코치로서의 지도능력을 인정받았다.

모교에서 가르쳤던 전기영·조인철 선수 같은 청출어람 제자들도 잊을 수 없다. 전기영 선수는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에서 3연패를 이루는 성과를 냈으며, 조인철 선수는 세계선수권대회 2연패의 위업을 이뤘다.

제자들이 세계를 제패하며 이름을 떨쳤을 때 그들을 가르친 스승으로서의 기쁨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 기쁨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나는 여러 스타선수들을 발굴하고 가르쳤는데, 특히 고등학교 때에는 무명선수였던 송대남 선수를 발굴해 청주대에서 가르쳐 국가대표 선수로 길러냈다. 결국 송대남 선수가 런던 올림픽 유도-90kg에서 우승하였을 때 비로소 나는 그토록 염원했던 꿈을 이뤘다.

생각해보면 나의 유도인생은 국내에만 머물지 않았다.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대만유도협회 지준안 전무이사로부터 대만국가대표 총감독과 대만 국립체육대학교에 교수로 초청을 받아 6년 6개월을 가르치는 동안 대만 유도 팀은 아시아 하위팀에서 상위팀으로 진입하는 쾌거를 이루어냈던 것이다.

그 후 2014년 9월 모교인 청주대 체육교육과에 교수로 임용돼 현재는 체육교육과 학생들에게 이론과 실기를 가르침과 동시에 유도부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이제는 유도 지도자로서 전 세계의 무예인들이 참가하는 세계 무예 마스터쉽 대회가 올림픽과 견줄 수 있는 국제대회로 자리매김 할 수 있도록 무예진흥에 대한 기초연구, 응용연구 및 학제적 연구를 충무학회를 통해 지원해 나갈 것이다.

<매주 월·수·금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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