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이 30일 오전 10시 20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 청사에 도착했다. 전직 대통령으로 영장실질심사를 받는 것은 헌정사상 처음있는 일이다. 서류 심사만으로 구속영장이 남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된 영장실질심사가 시행된 것이 1995년 12월 29일이었던 까닭에 노태우, 전두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 제도의 ‘혜택’을 보지 못했다.
이날 삼성동 자택을 나와 법원에 도착한 박 전 대통령의 얼굴은 시종 무거웠다. 법원 청사 앞에 설치한 ‘포토라인’에 서지 않은 채, 국민에 대한 메시지 한 마디 없이 박 전 대통령은 심문법정으로 향했다. 당초 박 전 대통령측은 포토라인이 주는 부담감 때문에 지하주차장을 거쳐 곧바로 심문법정으로 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대해 법원은 “특혜는 없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이날 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서 검찰측과 변호인측은 격렬한 공방을 벌였다고 한다. 사안이 중대한데다 결과로부터 도출될 파장 또한 워낙 큰 까닭에 배수진을 친 양측은 한 치도 물러설 수 없었을 것이다. 박 전 대통령에게 제기된 범죄사실이 13개에 달하고 검찰과 변호인간 다툴만한 사안도 많아 심문은 꽤 오래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구속 여부를 가름하는 요소는 세 가지다. 도주 우려, 증거인멸, 사안의 중대성이 그것이다. 박 전 대통령을 옹호하는 쪽의 논리는 삼성동 자택을 지지자들과 경찰, 기자들이 에워싸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에 도주 우려가 없고,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과 관련된 공범과 종범들이 대부분 구속된 상태이기 때문에 증거인멸을 시도할 수 없으며, 중대한 사안에 대한 구체적인 물증이 없고 박 전 대통령이 혐의를 부인하고 있으니 재판에서 가려보자는 것이다. 여기에 전직 대통령이 산발한 머리로 수갑에 채워진 채 국민 앞에 선다는 것은 국가적으로 치욕를 당하는 것이며 국격을 떨어뜨리는 일이라는 동정론을 더한다. 일견 수긍이 가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에도 박 전 대통령 측은 귀 기울여야 한다.
그동안 박 전 대통령은 국민에게 약속한 것을 어기고 검찰의 수사도, 특검의 수사도 회피했으며, 헌재 출석까지 거부해 헌재로부터 ‘헌법 수호 의지가 없다’는 지적을 들었던 만큼 재판에 제대로 출석할지 모르기 때문에 도주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증거인멸 또한 반대논리가 가능하다. 검찰과 특검의 청와대 압수수색을 세 차례 거부했던 전력이 있는데다, 파쇄기를 청와대가 집중적으로 구입한 것 또한 증거인멸을 시도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느냐는 의혹이 이는 것이다. 더욱이 같은 사안으로 공범과 종범들 대부분이 구속 수감된 터에 주범으로 지목된 박 전 대통령만 불구속 기소한다는 것은 만인 앞에 법이 평등하다는 ‘법의 형평성’에도 어긋나는 일인 것이다.
전직 대통령이 수의를 입고 국민 앞에 선다는 것은 당사자는 물론 국민들에게도 치욕스런 일이다. 그 모습을 진정으로 보고 싶어하는 국민들은 없다. 국격을 떨어뜨리는 일인 것도 분명하다. 그러나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그보다 한 차원 높은 성질의 것이다. 그것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 2항 ‘국민주권(國民主權)’이 실현되는 나라, 그런 헌법적 가치를 권력이 무너뜨렸을 때엔 그 권력을 용서하지 않는 준열함이 살아있는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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