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된 지 3주 만에 결국 영어의 몸이 됐다. 전직 대통령으로서 세 번째, 임기 중 탄핵당한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이다. 1998년 국회의원 대구달성 4.2보궐선거에서 당선되며 정계에 입문한 박 전 대통령의 정치 인생은 19년 만에 치욕스러운 종언을 고했다.
지난 30일 오전에 시작된 법원의 피의자 심문은 자정을 넘겨 다음날 새벽까지 초조하게 이어졌으나, 영장이 발부되고 ‘미결수용자’가 되는 데는 2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를 좋아한 국민이나, 싫어한 국민이나 지켜보는 마음은 온전히 편치 않았을 것이다. 꼭 인간적 동정심 때문만이 아니라 박 전 대통령의 불명예스러운 추락은 그 혼자만의 비극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름 아닌 국가의 비운이자 국민의 불행인 것이다.
1987년 헌법체계 아래에서 대통령 1인의 절대 권력이 5년 임기 말로에 어떠한 결과를 낳았는지 우리는 그동안 잘 지켜봐 왔다. 그래서 내치와 외치를 분리하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역할론을 재정립하는 분권형 개헌의 필요성이 요사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이유다.
박 전 대통령의 영장 심사를 맡은 강부영 판사는 “주요 혐의가 소명되고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어 구속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이 인정 된다”고 영장 발부 사유를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은 법정에 나가 판사 앞에서 혐의 사실을 부인하는 진술을 했다. 하지만 강 판사는 박 전 대통령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한테 적용된 혐의는 13가지나 되지만 영장 발부를 결정한 것은 뇌물수수 혐의로 봐야 한다. 검찰은 구속 만기일인 오는 19일까지 박 전 대통령을 재판에 넘겨야 한다. 하지만 대선 선거운동이 공식적으로 시작되는 4월 17일 이전에 기소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본 재판은 대선 이후에 시작될 듯하다.
재판에서도 초점은 뇌물죄의 인정 여부다. 검찰이 특정한 뇌물액은 433억원이다. 뇌물은 1억원만 유죄로 확정돼도 10년 이상 징역 또는 무기징역에 처할 수 있다. 다른 범죄가 추가로 인정되면 45년까지 유기징역이 가능하다. 박 전 대통령은 지금까지 혐의사실을 완강히 부인해왔다. 무거운 형량이 두려워 태도를 바꿀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전직 대통령으로서 국민의 상처를 보듬고 다시 화합으로 이끈다고 마음먹는다면 어려운 일도 아니다. 10.56㎡의 독방에 갇힌 처지에 절망하지 말고, 바다 같이 넓은 포용의 도량을 열기 바란다.
박 전 대통령의 구속수감은 우리 헌정사에 중요한 변곡점이 될 것 같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한층 더 단단한 반석 위에 올려놓은 상징적 사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도 법을 어기면 헌법재판소에 의해 파면당할 수 있고, 보통 사람과 똑같이 법의 심판대에 서야 한다는 진리를 새삼 국민에게 보여줬다는 점에서 그렇다.
힘 있는 소수가 아니라 법에 따라 국가가 운영되는 ‘법치의 원칙’을 만천하에 천명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차기 정부는 박근혜 정부의 실정을 ‘반면교사’로 삼아 이런 비극적 사태를 재연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또다른 문제는 개헌이다. 현 사태를 오롯이 박 전 대통령 개인의 잘못으로 치부하는 것은 사리에도 맞지 않고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제왕적’이란 반민주적 수식어를 달고 있는 지금의 5년 단임 대통령제는 오래전에 그 역할과 수명을 다했다. 당장 박 전 대통령의 파면과 구속수감이 생생한 반증이다. 그런데도 대선 주자라는 사람들이 개헌을 남의 일 쳐다보듯 하는 것 같아 심히 유감스럽다. 민주주의의 발원은 불완전한 개인, 즉 국왕의 지배를 타파하고 대신 법과 제도의 지배를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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