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구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지난 1일은 아우내 장터에서 천안, 진천, 청원, 연기 지역 주민 3000여명이 손에 태극기를 높이 들고 힘차게 흔들며 목이 터져라 항일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한지 98주년이 되는 아주 뜻 깊은 날이었다.

필자는 10여 년 전 포암 이백하 선생이 기초하고 조인원 선생이 기미년 4월 1일 아우내장터에서 낭독한 항일독립선언서를 발굴해 신문과 방송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지방과 중앙 일간지에서 지면을 많이 할애, 대서특필해 역사학계는 물론 전 국민적인 관심을 불러 모았다. 그러자 방송국에서도 필자를 출연시켜 보도함으로써 향토사학자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갖게 해주었다.

그런데 최근 몇 해 전부터 해마다 3.1절이 돌아오면 독립기념관에서 성대한 기념식이 엄숙하게 개최되고, 아우내장터에서 봉화제 행사를 하고 있지만, 내 마음은 그저 착잡하기 그지없다.

왜냐하면 내가 지난 10여 년 동안 구국동지회 이름으로 발표된 아우내장터 독선선언서 원본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해 보았지만, 아직까지 원본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실증주의(實證主義) 사학을 신봉하는 강단사학자들이 아직까지 아우내장터 독립선언서 원본을 찾지 못하고, 구국동지회에 대한 기록을 찾지 못했다는 이유로 독립운동가들과 그 후손들의 생생한 증언과 기록을 무시 내지 부정하고 있으니 정말로 안타까운 마음 이루다 형언할 수 없다. 심지어는 조작 가능성까지 들고 나와 나는 물론 항일독립운동가 후손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

최근 필자가 3.1운동을 전문적으로 조사연구하고 있는 역사학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2017년 3월 29일 현재까지 기미년 3.1운동 당시 지방에서 독립선언서를 자체 기초해 선언한 것으로 밝혀진 곳은 경상남도의 함안(咸安)과 하동(河東)을 비롯해 3-4곳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리하여 기미년 4월 1일 아우내 장터에서 선언된 이백하 선생이 기초한 독립선언서는 한국의 항일독립운동사상 아주 드문 사례로 그 역사적 의의가 매우 클 뿐만 아니라 지역의 정체성(正體性,identity)을 밝히는 데에 아주 중요한 향토 사료로 인식되고 있다.

그리하여 필자는 지금도 그 원본과 구국동지회(救國同志會)의 실체를 찾아내기 위해 광복회, 3.1여성동지회, 정부기록보존소, 국립중앙도서관, 대학 도서관, 독립운동사연구소, 신문과 방송사 등을 돌아다니며 전국적으로 아우내 장터 독립선언서 원본 찾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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