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헌 <충북조달청장>

이기헌 충북조달청장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27년, 그동안 많은 추억거리가 있지만 축구와 관련된 추억들이 당연 으뜸이다.

1990년 재무부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출근 첫날 선배가 ‘축구를 잘 하느냐?’고 물었다. 당시에는 실·국별로 축구 경쟁 열기가 대단했다. 축구를 잘하는 사람이 일도 잘하는 것으로 간주될 정도였다. 인사철이 되면 축구를 잘하는 사람을 차지하기 위한 선수 쟁탈전도 치열했다. 지금은 믿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축구를 잘해서 남들이 선망하는 부처로 자리를 옮긴 경우도 있었다.

필자는 성공적인 직장생활을 위해서는 건강한 몸을 위해서, 또한 조직원들끼리 함께 할 수 있는 취미활동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마침 잘 됐다’ 하고 축구의 세계에 입문(?)하게 되었다.

지금도 축구를 하고 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1994년 실·국 대항 축구대회에서 필자가 속한 팀이 우승했던 것이다. 당시 전통적인 강팀이 있었다. 그 팀은 수년간 우수선수들을 대거 스카우트했기 때문에 매번 우승을 독차지 했고 대적할 팀이 거의 없었다. 말 그대로 지존이었다. 그런데 필자가 속한 팀이 결승에서 그 팀과 만나게 되었는데 승리 하는 이변이 일어난 것이다. 선수 개개인으로 볼 때 객관적으로 실력이 많이 부족했지만 ‘한번 해보자’는 막무가내(?) 정신력의 승리였다. 똘똘 뭉쳐 연습했고 이겨야겠다는 의지는 하늘을 찌를 듯이 대단했었다. 당시 연습을 하던 학교 운동장에는 야간 조명시설이 없어서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밝히면서 밤새 연습을 했다. 그 노력의 결실은 결코 잊을 수 없는 감동이었다.

결승전 휴식시간에는 감독이 선수들의 발을 일일이 마사지 해주며 용기를 북돋아 주었던 기억도 잊혀 지지 않는다. 우승의 기쁨과 함께 선수들의 발을 잡고 있었던 감독의 모습이 떠오르면 아직도 울컥하는 벅차오름이 있다.

축구와 연관된 두 번째 기억은 2006년 독일 월드컵 예선전인 한국과 프랑스의 경기를 현장에서 응원한 것이다. 독일 유학 기회가 있어서 그 당시 가족과 함께 독일에서 거주하고 있었다.

입장권을 구입하면서부터 마음이 설레어 잠을 설칠 정도였다. 경기 당일 미리 도착해서 경기장을 둘러보고 경기 시작과 함께 목이 터져라 응원했다. 모든 순간 손에 땀이 났고, 눈을 뗄 수 없이 긴장되고 흥미진진했다. 마침내 후반 35분 박지성 선수가 골을 넣은 순간에는 나도 모르게 옆 사람을 부둥켜 안아버렸다. 옆 사람은 그날 처음 본 사람 이었는데 말이다. 내가 환호하던 그 모습이 TV에 방영되었고, 한국에서 지인들로부터 여러 통의 전화를 받았다. ‘공부하러 간 사람이 왜 축구장에 있냐?’고 장난스럽게 농담을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경기는 비록 무승부였지만 경기관람 후 대한민국의 국민임이 자랑스럽고 애국심이 저절로 생겨났다. 지금도 당시의 벅찼던 감동이 밑거름이 되어서 국가를 위해서 나름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도 주말마다 젊은이들과 몸을 부딪치며 축구를 한다. 예전에 비해 순발력은 떨어지지만 축구에 대한 열정은 줄어들지 않았다.

나의 꿈은 80세까지 지금처럼 부상 없이 축구를 하는 것이다. 주말부부이면서 주말마다 축구를 하러 나가는 것이 아내와 아이들에게 미안할 때가 많다. 젊은이와 부딪치면 다칠 위험이 있으니 골프나 다른 종목으로 바꾸라고 친구들이 권하기도 하지만 난 아직은 축구를 놓을 마음이 없다.

요즘 ‘인생 100세 시대’란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즐기며 살 수 있으면 인생의 반은 성공했다’는 말도 있다.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젊은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더 활기차고 의미 있는 직장생활을 하기 위해서 “좋아하는 취미생활을 즐기면서 자신이 발전할 수 있는 삶을 만들어보라”고. 그리고“인생도 스포츠도 성과를 만들어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을 즐길 줄 알아야만 행복한 매니아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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