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희 팔 논설위원 / 소설가

박 희 팔 논설위원 / 소설가

 ‘기러기 불렀다’라는 말이 있다. ‘기러기 펄펄 날아갔다.’ 라는 ‘기러기 노래’를 불렀다는 뜻인데, 사람이 멀리 도망가 버렸다는 걸 비유해서 이르는 말이다. 피붙이냐고 딱 두 자매뿐으로 동생의 남편인 제부가 기어이 이 ‘기러기 노래’를 부른 것이다. 고생스럽게 정처 없이 떠도는 사람을 같은 외로운 처지라고 정 많은 동생이 언니의 만류를 무릅쓰고 연을 맺더니 그예 우려했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전부터 가끔 그 역마살을 이기지 못하고 불시에 집을 나가서는 떠돌다가 예고 없이 돌아오곤 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애가 다섯 살 먹어 나간 사람이 1년이 가고 2년이 가고 애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중학교에 입학했는데도 소식이 없다. 그 인고의 세월을 더 버티지 못하고 동생은 애가 15살 되던 해 한 품은 일생을 마쳤다. 동네사람들이 더 비통해하면서 한마디씩 했다. “사람이 은공을 알아야지. 제가 누구 덕에 장가가서 그런 가정을 꾸밀 수 있어. 에이 배은망덕한 놈.” “웬만하면 마누라하구 자식새끼 걱정이 돼서래두 돌아왔을껴. 안 그려?” “필경 여기저기 떠돌다 배곯아 굶어죽었을껴. 그러니 오매불망 꼴 같은 남편 기다리다 죽어간 마누라가 세상을 떴는데두 여태까지 안 오지. 내 말 틀렸어?” “그러게 진즉에 우리가 ‘쇠문이’ 같은 사람이라고 했잖은가?” “그려, 곧 집안을 망치는 자, 하는 짓이 못되고 앞날이 없는 사람 같다고 했지. 그 말이 딱 맞아.”

15살 먹은 이질 하나 남겨 놓고 동생이 갔으니 언니는 천애고아인 이질을 집으로 데리고 왔다. 그런데 이 이질이 새로 전학해온 학교에서 쌈질이 잦다. 주로 이쪽이 가해자이고 저쪽이 피해자이다. 피해자의 학부모가 집까지 찾아오고 학교에선 보호자의 부름을 자주한다. 그러니 언니의 마음이 편한 날이 거의 없다. 이질을 달래도 보고 얼러도 보았으나 약효가 길지 않다. 하여 하루는 이질에게 다짐조로 물었다. “너, 질레 이렇게 사고만 치면서 학교 다닐껴?” “학교 다니기 싫어요.” “학교 안 다니믄 집에서 놀고 먹을껴?” “집에서 이모부하고 농사일할게요.” “농사가 얼마나 힘든지 알어?” “그래두 할래요. 학교 가기 싫어요.”

이래서 농사일을 하게 됐고, 꼴머슴행색부터 시작한 애가 기운은 세서 곧 상머슴행세로 농사일에 가담했다. 그래서 세경조로 대가를 쳐서 제 앞으로 통장을 만들어 주었다. 그런데 하루는 방에서 쿵쾅쿵쾅 하는 소리가 나기에 들여다보았더니 그 소리에 맞춰 몸을 흔들며 노래를 부르고 있는 거였다. 언제 들여놨는지 제 통장의 돈을 빼서 전축이라는 걸 들여놓은 것이다. 하는 짓이 괴상스럽고 모진 데가 있는 건 아직도 그대로다. 여기서도 동네사람들은 이런 이질을 보고 한마디씩 한다. “그놈 심사가 꼭 모과나무 심사여.” “맞어, 모과나무처럼 뒤틀리어 승질이 순수하지 못햐.” “똥 친막대기 마냥 천하고 가치도 없는 버림받은 사람 같다니께.” “집안 망친 그런 제 애비 닮지 말구 정스럽구 위아래 알아보는 제 엄마 닮으면 좋으련만.” 그러니까 이질도 제 아비 닮아 ‘쇠문이’에 비유되는 것이다.

이 이질을 맡은 죄로 언니는 성인된 이질을 장가보내 한마을 이웃으로 살림을 내주었다. 가까이서 돌보아주기 위해서였다. 한데 사내애 하나 낳고 한 이태 잘 살더니 어느 날 갑자기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된겨. 둘이 다투기래도 했는감?” “아뉴, 지두 몰라유 온다간다 아무런 말두 없었어유.” 언니는 제부의 일이 떠올랐다. 그도 온다간다 아무런 말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지금까지이고 그로 인해 동생이 가고 그리고 이질을 데려왔다. 그럼 지금 이 이질의 아내인 이질부와 이에 딸린 애는 어찌 되는 것인가. 언니는 이 일로 가슴이 답답하다.

이질은 이태가 가고 3년이 됐는데도 소식이 없다. 그 사이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그 이질부가 이웃사내와 눈이 맞아 둘이 한밤에 동네를 뜬 것이다. 누구를 나무라고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언니는 또 다섯 살짜리 이질의 핏줄을 맡을 수밖에. 그런데 이질부가 사라진지 꼭 두 이레 만에 이질이 돌아왔다. “이모, 제 딴에는 더 이상 이모께 기댈 수 없어서 돈 모아 식구를 데려갈려고 한 거예요. 그간 한 푼도 쓰지 않고 공사판에서 일했습니다. 그래서 셋방도 얻어놨어요.” 그리고 이질은 어린 제 핏줄을 데리고 떠났다. 그런지 1년이 가까울 무렵 새 아내라고 데리고 와서 인사를 시키더니, 거기서 남매를 낳았고 명절 때나 집안 큰일 때에는 빠지지 않고 온다. 제 엄마 제사도 잊지 않고 지낸다 한다. 이제야 이질이 쇠문이딱지를 떼게 된 것이다. 그러면 됐지 여기서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늘그막에 언니의 가슴이 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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